먼지 하나의 무게
#우리 집이 최고
아무리 외가가 좋다고 해도 우리 집 보다 좋을 수는 없다.
어느 날 아침에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내가 외가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뭐 때문인지 우리 4남매가 다 가지 않고 나와 동생만 막내 이모 따라 외가에 왔던지라 좋은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심심하고 적적했다. 그렇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거리기도 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보고 싶어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울컥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좀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닌데 기어이 울음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상한 건 어제만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집안이 뭔가 싸한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시무룩한 것 같았고, 이모는 어딘가 아파 보였다. 대체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정말 할 수만 있으면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모가 밥상을 들고 턱이 높은 부엌 문지방을 넘다 실수로 엎어버렸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뭐라고 막 야단을 쳤고 난 그 분위기가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순간 울음이 터져 버린 것이다.
이왕 터진 김에 집에 가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해 버렸다. 그리고 더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할머니와 이모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지 알겠다며 나를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난 그때 세상 사는 법을 깨우쳤던 것 같다. 진심을 다한 일에 사람들은 무릎 꿇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진심을 다해 우는 애를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그래도 난 그날 당장 집에 돌아가진 못하고 다음 날이나 돼야 돌아갈 수 있었다. 나를 데려다주려면 이모밖엔 없었는데 그날은 몸이 안 좋으니 그 정도는 내가 이해하고 양보해야지 별 수 있나. 집에 돌아오고 나니 얼마나 편하고 좋던지 비로소 안정감이 느껴졌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우리 집에서 살아남기
그렇다고 우리 집이 마냥 좋기만 했냐면 그렇지도 않다. 사실 엄마는 그다지 다정다감하지는 않았다. 잘 웃지도 우리들과 말을 잘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땐 잘 웃지도 우리들과 잘 말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어리디 어린 자식들과 뭐 나눌 말이 그렇게 많겠는가? 우리도 빨리 자라 엄마와 같은 눈높이가 되어 말하고 공감하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말이 없으니 왠지 모르게 감시받는 것 같아 불편했다. 게다가 워낙 깔끔했던지라 뭐하나 흐트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는 부지런한 성격이기도 했으니 그 밑에서 자라나는 새싹 같은 우리 4남매는 어떠랴. 그렇지 않아도 친할머니가 어쩌다 한 번씩 우리 집에 오실 때면, 애들 같지가 않고 늘 의젓하다고 칭찬하시곤 했는데 알고 보면 그건 그리 좋은 말은 아니다. 어른의 눈높이에서나 좋은 거지 그때 우린 먼지 하나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엄마의 투시력에 가까운 눈 때문에 먼지 하나의 무게가 우리들 몸무게만 했을 것이다. 그것을 매일 떨어 트리지 않으려고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짊어지고 산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사는 건가. 아무튼 그러다 엄마가 전화를 받거나 시장에라도 가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 자유로움이 얼마나 좋던지.
그렇다고 엄마가 엄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엄마는 그저 엄마로서 성실했을 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그러니 그런 엄마에게 부응해야지 어쩌겠는가.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