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부서진 자리에서 피어난 것들
암 진단을 받던 날, 내 세상이 무너졌다. 더 아래로 떨어질 곳이 있었나.
엄마와 할머니의 부고,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였던 반려견 딸기의 죽음. 내 곁을 떠난 소중한 존재들은 이제 없다. 그런데 텅 빈 마음 위에, 병이라는 그림자가 덮쳤다.
숨을 쉬고 있어도, 살아 있다는 감각은 사라졌다. 무슨 업보가 있길래 나에게 이러나. 신이 존재한다면 꼭 이유를 듣고 싶었다. 왜 불행을 연달아 주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암’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마주하며 시간이 멈췄다. 때마침 다니던 회사도 사정이 어려워 희망퇴직자를 모집했다. 다행인 건 노견 딸기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최종 병명을 알았다. 떠난 사람들이 그리웠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나를 걱정할 사람도 내가 걱정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회사를 그만두며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내려놨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글을 써오며 내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일이라며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나 사회로 나와 현실을 마주하니 돈을 벌 수 있는 글을 써야 했다. 촬영현장을 디렉팅 하고, 출연자를 설득하고, 제품을 설명하는 일인 다역.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지만 늘 시간이 촉박했다. 광고 마케팅 대행사를 거쳐 인하우스 혹은 브랜드 회사에 와도 회의와 업무로 늘 시간에 쫓겼다.
시간이 나를 끌고 다니다 보니 야근, 음주, 수면 부족 삼종 세트는 일상이었다. 아마 불규칙하고 불안한 삶을 따라다니다 보니 골병이 들었나 보다.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 집에서 일 년여간 쉬며 그런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아프기 싫다고. 뒤집어 생각해 보니 사실 난 살고 싶었나 보다. 다시 건강해지려면 지나가는 순간들을 그냥 보내기 싫었다.
노트와 펜을 꺼냈다.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단 하나였다. 머리에 생각나는 상념들을 정리해 적는다. 아프고 힘들었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즐거운 일, 재밌었던 일도 있었다. 깜지처럼 빽빽한 글자를 한 번 더 가다듬는다.
하얀 화면 위에서 깜박이는 커서, 그리고 내 마음을 대신하는 글자들이 흐른다.
글은 나를 다시 불러냈다. 눈물처럼 흘러내린 문장 속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이 가득 담겨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강해지고 싶은 거였다. 새벽 어스름이 넘어가는 그쯤 속마음을 글로 적었다. 브런치에 ‘괜찮다 괜찮지 않다’라는 요일별 연재를 시작했다. 유방암을 겪으며 지나간 마음을 써 내려간다. 글은 마치 편지와 같았다.
꿈에서조차 선명하게 다가오는 엄마의 얼굴,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전하지 못한 말을 글로 적었다. 현실에서 사라진 엄마가 글 속에서 살아난 것 같고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글은 과거만 불러오지 않았다. 글은 현재를 붙잡는 그물망이 돼 주었다.
내 곁에 있는 작은 존재, 반려견 자두.
바닷가 모래 위를 처음 딛던 발자국, 작은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어오르던 순간들. 사소한 일상을 글로 적어두자, 그 하루는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았다. 바다 바로 앞 모래사장에 찍힌 반려견의 발자국을 사진으로 남겼다. 모래는 파도에 휩쓸려 금방 사라졌으나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글 속에서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글은 내 안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를 지켜내는 기도가 되었다.
글을 쓰며 나는 알았다.
아픔을 기록하면 그것이 상처가 아니라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고통을 꺼내놓으면 그것이 무너짐이 아니라 다시 서는 힘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나를 결코 나약하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내 글에게 솔직해지려고 한다.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위로가 되었다” 말할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글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숨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나와의 약속을 위해 브런치를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