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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의 첫 번째 집, 강아지 울타리

열 칸짜리 울타리 생활의 시작

by 정벼리

집에 돌아온 우리는 망태 할아버지의 망태기, 아니 호두 짐꾸러미를 거실에 풀어두었다. 아이는 품에 안고 있던 호두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나에게 호되게 한 소리를 들었다. 강아지가 졸랑졸랑 다가와 내 다리에 닿은 순간 내가 소스라쳤기 때문이다. 발꿈치에 닿은 온기 있는 솜털의 존재가 호두라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온몸에 닭살이 쫙 돋았다.


"별이야! 갑자기 강아지를 풀어놓으면 어떡해! 빨리 다시 안아!!"


꽤나 중증의 강아지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강아지가 언제든 달려들 수 있는 상태에 놓이니 본능적으로, 온몸이 굳어 꽥 소리를 쳤다. 아이는 깜짝 놀라 황급히 강아지를 안아 들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이 강아지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머쓱해진 나는 적응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구입해 온 강아지 물품을 주섬주섬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그 사이 남편은 안방 침대 발치 아래에 강아지 울타리를 뚝딱뚝딱 조립하여 설치했다.


가게 사장님은 강아지의 분리불안을 예방해야 한다며, 아침부터 밤까지 가장 출입이 적은 방에 강아지 울타리를 설치해 두고 적어도 2주간 사료를 주거나 배변패드를 갈아줄 때를 제외하고는 강아지를 안아주지도 바라보지도 말라고 일렀다. 이러한 방식의 강아지 훈련은 많은 보호자들 사이에 그 효과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결론적으로 우리 집에서는 처참히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우리 집에서 사람의 출입이 가장 적으면서도 통제하기 쉬운 방은 안방이었기 때문에 호두의 첫 번째 집인 열 칸짜리 울타리가 부부 침대 발치 아래에 설치되게 된 것이다. 가로는 두 칸, 세로는 세 칸씩 직사각형 모양으로 설치한 울타리 안에는 여분의 침대 패드를 접어 깔고 한 켠에 보드라운 강아지 방석을 두었다. 방석 앞으로 밥그릇과 물그릇을 두었고, 반대편 끝에는 배변패드를 5~6장 겹쳐 깔아 두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강아지 집 세팅 방식이었다.


강아지 울타리에 들어간 호두


아이는 완성된 강아지 집에 호두를 내려놓으며 못내 아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앞으로 2주간 호두를 안아보지도 못하는 것이냐며, 낮에 호두가 너무 보고 싶으면 어떡하냐고, 호두가 혼자서 외로워하진 않을지 별별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남편이 아이를 향해 이야기했다.


"별이가 낮에 호두를 볼 수 있도록 거실 CCTV를 2주 동안만 안방으로 옮겨둘게. 그리고 호두는 아직 아기라 하루에 20시간 이상을 자니까 자는 동안은 외롭지 않을 거야. 호두가 좀 크고 나면 별이가 많이 놀아줘."


이미 평상시 아이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보다 한참 늦은 밤이었다. 남편과 나는 어서 잠자리에 들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아이는 고집스럽게 호두에게 우리 집에서 먹는 첫 끼니로 사료를 조금 주고 자겠다고 버텼다. 그러고는 고작 강아지 밥 주는 일이 뭐 대수라고, 잔뜩 긴장하여 어깨에 힘이 가득 들어간 채로 사료 두 숟가락을 강아지 밥그릇에 담아 주었다. 호두는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경계심이 많은 강아지는 처음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밥을 잘 안 먹을 수도 이다고 하던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호두에게는 경계심이라고는 단 한 톨도 없는 듯했다.


아이가 아쉬움을 그림자처럼 제 발걸음 끝에 길게 남기며 자러 돌아간 이후, 우리 부부도 씻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였다. 불을 끄기 전에 침대에 거꾸로 누워 호두를 내려다보았다. 주먹만 한 털뭉치가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며 짧은 꼬리를 휙휙 흔들어 댔다. 양방향으로 마음을 주고받을 일이 없는 나를 향해 일방적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듯했다. 앞으로도 사랑까지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 괜히 조금 미안해진 나는 강아지를 향해 이야기했다.


"난 네가 별로 좋지 않아. 나 말고 별이한테 꼬리를 흔들렴."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강아지가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고, 씻고 나온 남편이 대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앞으로 좋아지면 되지."


나는 머뭇거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과연 내가 얘를 좋아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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