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교육 실패기 : 거실이 거대한 울타리로 변했다.
강아지 울타리 교육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호두의 짧은 울타리 생활은 사람과 강아지 양 방향에서 모두 차근차근 실패의 길로 빌드업을 해갔다. 호두는 울타리 생활을 견디기엔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강아지를 향한 사랑을 감추는 법을 아예 몰랐다.
호두에게 하루에 두 번 사료를 주며 배변패드를 갈아주었는데, 호두는 방문이 열리기도 전에 다가오는 사람 발소리만 듣고도,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울타리에 매달려 꼬리 프로펠러를 돌렸다. 아침밥은 남편이 챙기더라도, 오후에는 어쩔 수 없이 아이와 내가 저녁밥을 주고 배변패드를 갈아주어야 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여전히 호두를 맨 손으로 만지거나 호두가 맨 살에 닿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닭살이 돋아났다. 호두에게 다가갈 때마다 나는 세상 비장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먼저 들어가서 호두를 안아 들어. 그럼 내가 사료를 주고, 배변패드를 갈아줄게. 엄마가 울타리 밖으로 다시 나올 때까지 절대 강아지 내려놓으면 안 돼!"
"알았어, 엄마! 나만 믿어!!"
아이는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주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는 1초라도 더 강아지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으니 말이다. 호두도 낑낑대며 아이에게 어서 빨리 안기고 싶어 온몸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가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주고, 배변패드를 갈아주는 동안, 둘은 칠월칠석에 만난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를 애틋해했다. 할 일을 마친 내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 이제 그만 호두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면 아이는 느릿느릿 마지못해 호두를 내려놓았다. 방문이 닫히고 한참 뒤까지 호두도 홀로 구슬프게 낑낑 울었다.
호두가 우리 집에 온 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날수록 아이와 호두의 애틋함은 점점 깊이를 더해갔다. 호두를 내려놓아야 할 때, 이제 아이는 숫제 곧 눈물이라도 터뜨릴 듯 괴로워했고, 호두의 슬픈 낑낑거림도 점점 데시벨을 높여가며 길게 길게 이어졌다. 강아지의 주인에 대한 분리불안을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루하루 분리불안을 조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울타리 교육이라는 것이 과연 진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유튜브에서 울타리 교육을 포함한 온갖 강아지 훈련 방법을 찾아보고, 주변에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들에게 묻고, 애견 카페에 가입하여 정보를 찾고, GPT에게 강아지 훈련에 대한 고민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경로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종합하여 확인한 울타리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두 가지였다. 우선 아직은 너무 약한 아기 강아지가 충분한 수면을 취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강아지에게 울타리 안에서 혼자만의 공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제공하여, 천천히 새 집과 가족에 적응을 시키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토대로, 호두가 집에 온 지 열흘이 지난 뒤 우리는 방 안에서의 울타리 교육을 완전히 포기했다.
아침부터 저녁 먹을 무렵까지 다들 회사와 학교, 학원에 가있느라 우리 집은 꽤 긴 시간 비어있어 호두가 거실에 나와 있어도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 아홉 시 무렵이면 아이가 잠자리에 들고, 나와 남편도 자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각자 휴대전화나 책을 들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호두를 거실에 내놓는 것이 오히려 강아지 숙면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가 안방에 들어서면, 호두는 나와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끝없이 낑낑거리느라 도통 잠을 자지 못했다.
호두는 울타리 안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익히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가족들의 관심을 끌어볼까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았다. 호두를 향한 아이의 감춰지지 않는 절절한 애정은 호두의 그런 모습을 강화시키며 점점 부추기기만 했다.
우리의 결정에 힘을 실어준 부가적 요소는 호두가 배변을 90%에 가깝게 잘 가렸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거실에 내놓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겠다 싶어, 실패 일로를 걷고 있는 울타리 교육을 과감히 포기하고 호두를 거실에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호두의 첫 번째 집인 울타리는 해체되어 거실 화분을 둘러싼 울타리로 재탄생하였다. 신발을 물어뜯거나 부엌에서 전자제품을 작동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현관문과 부엌 출입구에 설치할 안전문을 주문하고, 거실 한 켠에 깔아줄 강아지용 카펫도 주문했다. 갑자기 공간이 넓어져 배변을 못 가릴까 봐 배변패드도 여기저기 서너 군데에 넓게 깔아 두었다. 웃기게도 거실이 거대한 강아지 울타리가 된 기분이었다.
호두는 거실 생활에 굉장히 쉽게 적응했고, 무척 행복해했다.처음 며칠간은 아침에 가족들이 집을 나설 때 고개를 갸웃거리며 깽깽거리더니 이내 받아들였다. 이후로는 의젓하게 현관 안전문 앞에서 마치 배웅이라도 하듯 얌전히 서있었다. CCTV로 살펴보면, 가족들을 보내고 나서는 제 쿠션으로 돌아가 천연덕스럽게 잠을 청했다. 오후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놀고, 너른 거실을 발발발발 뛰어다니기도 했다. 애견 카펫이 안 깔린 곳에서는 곧잘 미끄러지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은 전부 내 것으로 접수했다는 듯 잘도 놀았다.
그래, 기왕 너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니, 행복한 견생을 누리게 해주마. 나는 호두를 위해 애견 카펫을 잔뜩 추가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