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 이야기
지천에 신록이 움트는 봄부터 대기가 달궈지는 초여름까지는 앞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이 많기도 많다. 본디 꽃의 궁극적인 목적은 번식에 있으니, 벌과 나비가 가장 활발한 시기에 맞춰 제 얼굴을 알리는 것은 생존을 위한 당연한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개화가 자연의 섭리라 해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꽃 한 송이를 밀어 올리는 데는 식물의 전 생애를 건 에너지가 소모된다. 조금이라도 따뜻하고 볕이 좋은 날이 그 고된 노동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해 줄 뿐이다. 그래서 봄날의 화원은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하다.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수다로 가득한 잔칫집 같다. 그 소란함 속에서 봄꽃들은 경쟁하기 바쁠지언정 고독할 틈은 없어 보인다.
찬란한 봄의 한복판에서, 오늘은 조금 뜬금없이 가을꽃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면 소국이 비로소 피어난다. 봄과 여름이 다 지나도록 국화는 홀로 때를 기다린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떠날 때까지 묵묵히 숨을 고르다가, 긴 낮 끝에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비로소 소국은 제 시간을 만난다. 찬바람을 견디며 느지막이 피어난 탓일까. 소국의 빛깔은 고우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꽃잎 한 장 한 장이 단단하고 색이 깊게 배어 있다. 모두들 다투어 피어난 뒤에서야 한 발 늦게 기지개를 켜는 소국은 보통 혼자다. 가을 화원에는 햐얗고 노랗고 불그스름한 소국 천지다. 친구들은 다 가고 혼자 남아있다. 그래서 찬 바람에 실려오는 은은한 국화 향기는 이제 곧 가을이 깊어질 것이라는 성실한 배웅의 인사 같다.
여기 돌담 사이에 피어난 소국더미는 몇 년 전 낙안읍성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그곳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는 몇 안 되는 읍성 중 하나다. 전시용 민속촌이 아니라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며 삶을 이어가는 터전. 지금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때 처음 그곳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비로움을 넘어 경외감까지 느껴졌던 그날의 기분. 누군가 태어나 자라고,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고, 늙어 사라지는 생의 바퀴가 몇 번이나 굴러가는 동안에도 이곳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니, 경이로운 충격이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낙안읍성은 여전했다. 세월을 이고 앉은 초가지붕도, 정겨운 돌담도, 그 앞에 무심하게 피어난 가을 소국까지도.
나에게는 스무 명 남짓의 입사 동기가 있었다. 철이 들락 말락 하던 시절, 우리는 꽤 긴 교육 기간을 함께 보냈다. 뙤약볕 아래 아침마다 줄 맞춰 달리며 투덜거렸고, 서로의 공책 귀퉁이에 어린아이처럼 낙서를 하며 낄낄거렸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터라 각자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사회생활도 겪은 뒤 모인 것이었지만 함께하는 동안만큼은 나이를 잊은 채 실없는 장난으로 하루를 채웠다. 온종일 경쟁적으로 허튼소리를 내뱉으며 눈물이 맺힐 만큼 웃어대던 시간들. 함께 멍청하게 구는 것만큼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우리는 서로의 삶에 기꺼이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멍청하고도 소중한 시간들을 나누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던 교육기간을 마치고 우리는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또 누군가는 저렇게 각자의 몫을 살아냈다. 그러다 연고 없는 타지로 발령받았던 한 명이 가장 먼저 회사를 떠났고, 뒤이어 하나둘 작별의 인사를 남기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이직이 낯설지 않은 직업이기에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었지만, 처음 모였던 날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떠난 이가 남은 이보다 많아졌다는 것을. 그리고 지난주, 가장 가깝게 의지했던 동갑내기 동기마저 짐을 싸서 떠나갔다.
촌스러운 나는 다시 못 볼 것도 아닌데, 그 이별이 그렇게나 서글펐다. 어차피 지역이 달라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기도 빠듯했고, 대화의 대부분은 모니터와 휴대폰 너머로 오갔으니 물리적으로 달라질 것은 크게 없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너는 거기 있었는데. 해결의 엄두가 나지 않는 사건에 치일 때도, 이런저런 괴로움에 미쳐버릴 것 같을 때에도, 서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휴직과 복직을 반복할 때에도 우린 늘 그 자리에서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응원의 태세를 한껏 갖추고 있었는데. 며칠 동안이나, 석양 어스름 놀이터에 혼자 남은 어린애처럼 나는 외롭고 고독했다.
오늘은 꼭 내가 한발 늦게 피워내는 가을 소국 같다. 봄철에 한껏 피어나는 친구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숨만 고르고 있는 느림보 말이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여본다. 괜찮을 거야. 낙안읍성 돌담 밑에 소국은 저렇게나 탐스러웠는걸. 남겨진다는 것이 꼭 외롭고 슬픈 것만은 아닐 거야. 귀하고 어여쁜 구석도 분명 있을 거야. 나는 내 몫의 시간을 견디고 기다리고 피어나면 그뿐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