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에세이 <그 겨울 러시아>
열차생활 3일째. 주변 승객이 세 차례 바뀌었다. 첫날 승객은 할머니였는데 그녀는 깨어있는 동안 내내 신문퍼즐놀이를 즐겼다. 어제 탔던 십대 소녀들은 카드놀이, 색칠놀이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새벽 탑승한 젊은 여성승객은 태블릿PC로 그림을 그렸다. 따분한 기차여행을 즐기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고, 세대 차도 있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색을 한다. 여행 내내 계속하는 고민은 나의 애물단지인 카메라를 언제까지 들고 다녀야 하나다. 고민은 늘 그렇듯 긴 항해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여행에도 이 애물단지를 껴안고는 같은 고민을 할 것이 뻔하다. 아직까진 후회보다 고민이 낫겠다 싶다.
무료함도 일상이 되는 3박4일의 기차생활이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내일 아침 7시, 이 열차의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역에 도착한다. 반쯤 남은 인생에 언제 또 타볼지 모르는 이 기차. 기대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진 못했고, 많은 추억도 생기진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기대에 기대다 보니 실망에 쉽사리 넘어진 것 같다. 하지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여행에 무사무탈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거면 됐다. 충분히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