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의 숲은 더 이상 마고당이 있던 숲처럼 음습하지 않다.
*사진: Unsplash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 전에 나의 아니마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예전에 아니마에 대한 글을 썼다. '적극적 상상'으로 나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대면하고 만날 때마다 업데이트를 해왔다. 그나마 가장 최근의 아니마에 대한 환영이다.
숲이다.
매우 작은 동전 같은 수천 개의 수생식물들이 계곡을 뒤덮고 있다. 그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숨을 쉬는 것만 같다. 음습한 숲은 반쯤 그림자의 어둠에 가려있다. 나의 아니마는 납치당했다. 그리고 이 숲으로 끌려왔다. 그건 몸으로 느껴지는 느낌이다. 그나마 이 숲에서 가장 밝은 곳에서 건장한 체격의 괴물이 아니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다. 보초를 서는 그런 분위기이다.
나는 숲의 골짜기를 따라 그리 가파르지 않은 경사의 골짜기를 걷는다.
숲의 차갑고 높은 습도는 내 어깨에 닿아, 숲의 손이 닿는 것만 같다.
기분 나쁜 소름 끼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짙은 초록의 낮은 풀숲 가운데 계곡의 물이 있다. 그건 계곡이라기보다는 습지이다.
거의 멈춰있는 그래, 고여서 썩어 들어갈 것만 같은 물이다.
그리고 거기에 나의 아니마는 꽁꽁 결박당한 채
수생식물들 사이에 처박혀 있다.
마치 죽어버린 시체처럼.
오필리아를 그린 거친 유화물감의 그런 이미지.
이것이 몇 달 전에 만난 나의 아니마의 환영이다.
https://brunch.co.kr/@stephanette/888
최근, 부산 해운대 여행에서 나는 장산을 올라 마고여신을 모신 마고당을 가려고 했었다.
그 차갑고 음습한 골짜기는 아니마의 환영 속 그런 숲이었다.
마고당 도착 직전에 독사를 만나서 마고여신은 만나지 못했다.
아직은 그럴 수 있는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내려왔다.
음기가 가득한 그런 계곡에서
난, 아니마의 극단으로 가면 어떤 감각인지 깨달았다.
https://brunch.co.kr/@stephanette/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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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 심야의 꿈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꿈을 꾸었다.
얇고 가늘고도 부드러운 피리의 연주 소리를 따라 걸었다.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들썩이게 되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숲이다.
원주민들이 나에게 모여들어서 축제를 하듯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분위기이다.
얇고 아름다운 피리소리 노랫가락에 맞춰서 다들 움직이고 있다.
춤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걷는 것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고 있다.
원주민 중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쓴 추장으로 보이는 이가
나의 곁에 와서 함께 웃으며 음악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 밀림, 그러니까 숲은
아니마가 잡혀서 죽어있던 그곳이다.
마치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떠오른 정오가 된 것처럼,
거긴 습하지도 않고 밝고 무척 행복했어.
그 피리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이런 꿈은 처음 꾸었다.
나의 아니마는 어디로 간 걸까?
그 계곡 물속에서 일어나 물기를 털어내고,
어쩌면 이미 나에게 통합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나는 굉장히 오랜만에 깊게 푹 잘 잤다.
출근길에
전혀 하지 않던 머리띠를 했다. 무의식적으로.
진주와 금색 잎사귀로 장식된 머리띠이다.
꿈과 진주머리띠
그래서 알게 되었다.
아, 나의 아니마는 이제 살아났구나라고
니그레도(Nigredo)에서 벗어나서.
오늘은 칼 G 융의 레드북을 읽어볼까 한다.
융 연구회의 양장본 전집을 사볼까 싶기도 하다.
멋진 만큼 정말 비싸다.
이래저래 독서는 정말 사치스러운 취미이다.
그러나,
아니마가 이끌어주는 대로,
피리 소리에 그대로 따라서 갔듯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