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상성애자이다. 책상은 하나의 플랫폼(platform)이다.
책상성애자의 책상을 고르는 기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책상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절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또한,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 조건에서 대부분의 책상은 탈락한다.
직접 손으로 글을 쓰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때
책상이 흔들리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아무리 비싸고 멋진 책상들도 미세하게 흔들린다.
사방에 다리가 좁고 길거나 하는 디자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다리가 선이 아니라 면으로 만들어진
그런, 책상을 선호한다.
크면 클수록 좋다.
스타벅스 매장의 원목 테이블을 훔치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낀다.
넓게 펼쳐진 그 상판 위에 노트북, 책, 찻잔, 메모지를 어지럽게 펼쳐놓고
작업하다 보면, 그 자체로 작은 세계가 된다.
책상은 하나의 플랫폼이다.
단, 상판이 크면 클수록 흔들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다른 구조적 보강이 반드시 따라줘야 한다.
다리의 위치, 재질, 중심의 무게 분산- 그 모든 것이 중요하다.
크기만 키워선, 오히려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
상판이 두꺼우면, 다리가 불편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하긴, 얇은 상판이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상판이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중요하다.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미세한 결이 느껴지는 그런 상판이 좋다.
고재 책상이나, 원목의 결을 매우 미세하게 구현한 그런 상판도 좋지만,
샌딩기로 수백번 작업한 것만 같은 공을 많이 들인 책상이 가장 좋다.
목공을 배웠었다. 작은 연필꽂이를 첫작품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도면을 잘 그리고, 정확하게 잘라내어도
육면체의 조립을 하면 미세한 단차들이 있다.
목공은 팔할이 샌딩 작업이다.
적당하게 그만두면, 두고두고 볼 때마다 거슬린다.
샌딩을 하다가 지쳐서
폐가 나무 분진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아서 쉬고 있다.
목선반(wood lathe, 木旋盤)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기둥에 마음을 빼앗겨서 시작했으나,
그건 상급자나 되어야 배울 수 있다.
목선반으로 만든 수십개의 기둥이 있는 침대를 만들면서 결국 그만뒀다.
아름다운 굴곡의 기둥을 내가 직접 만들 수가 없어서 좌절도 했다.
아마, 다시 시작한다면 목선반으로 수없이 많은 기둥들을 만들게 될 것 같다.
책상을 고르는 기준을
막상 적어보니,
나는 그리 까다로운 책상성애자는 아닌 것 같다.
겨우 4개의 기준만 만족하면 된다.
그래서 이 기준을 품고 오래 살아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책상을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책상은 하나의 플랫폼이다."
책상은 단순히 무언가를 ‘올려두는 곳’이 아니라,
무언가를 ‘올려본 나’의 방식이 반영된 철학의 바닥이다.
플랫폼이란 모든 것이 거기서 시작되고,
동시에 거기서 끝날 수 있는 공간이다.
책상 위의 질서와 혼돈,
상판의 감촉, 흔들림, 넓이, 소재—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나라는 플랫폼’의 프로토타입이 된다.
"책상은 하나의 플랫폼(platform)이다."
그 위에서 나는
사유하고, 망설이고, 지우고, 다시 적는다.
기억은 그 위에서 잠들고,
감정은 그 위에서 각성한다.
책상이란
나를 가장 많이 받아낸 사물이다.
그러니,
나는 좋은 책상을 만나 여생을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