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PSA>를 기획하며
<프로젝트 서울 어페럴>은 도시문명의 미래를 조명하는 전시이자 융합프로젝트이다. 본 프로젝트의 무대가 되는 창신동은 한국 제조업의 근대화·산업화·민주화의 기억이 농축된 종로구에 위치한다. 창신동 관련된 전시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필자였다. 처음 서울건축비엔날레의 일환으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비엔날레총감독으로부터 전시 제안을 하겠는지 이야기가 오갔고, 영국작가의 책 <On Bricklane>가 떠올랐다. 런던 시내의 동쪽 브릭릭레인에서 자란 저자는 봉제공장들이 위치했던 런던 동쪽 지역의 역사를 통해 다민족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읽어냈었다. 그 때 배웠던 개념이 건축사, 고고학 등에서 많이 쓰이는 ‘팔림프세스트로서의 도시(City as Palimpsest)’ 개념이다. ‘벗겨내고 다시 또 쓴다’는 뜻의 필사본을 의미하는 ‘팔림프세스트’는 종이 발견 이전 양피지에 필기했던 재록양피질 필사본을 뜻함과 동시에 그 기억의 중첩을 의미한다. 이 필사본을 자외선 조명으로 비추면 지워졌던 글들이 드러나듯, 전시가 관객들에게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혹은 망각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방법론이 될 수 있을까? 필자가 평소에 고민하던 방법론에 대해, 그리고 한국의 근대사에 대해 더 가깝게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 창신동과 브릭레인에 비슷하면서 다른 점은 브리티쉬카운슬의 한영상호교류해 프로젝트로 발전하기 충분했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창신동이란 그곳에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무명의 동네일 것이다. 전시를 떠나 도시계획과 건축과 연결되는 프로젝트였기에 필자는 도심재생관련 작업을 많이 했던 정이삭 건축가에게 전시 공동기획 제안하며 창신동에 가보았냐 물었다. 우연케도 그는 창신동 언덕 꼭대기에 건물을 산 젊은 디자이너 부부의 집을 디자인을 하고 있다 했다. 그 건물에 가보기로 했다. 창신동 골목의 첫 인상은 가파름의 수직성이었다. 실재로 창신동 전시장이 되었던 곳은 언덕 중간 지점이는데, 그 이후로 더 가파라진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그보다 더 높은 지대에 위치한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그 밑에 단층 건물들 사이로 기묘한 돌 절벽이 있었다. 이것은 수 많았던 그러나 파괴된 한국의 근대건물-20년 전 식민지의 잔재라 폭파된 조선총독부건물과 같은-의 건축재로 쓰인 화강암의 채석지였다. 그리고 그 밑에 자리 잡은 창신동은 40년 넘게 터득한 노하우로 도시 건축 재료의 공급지가 아닌 동대문 패션지구의 엔진으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 창신동의 중간 지점에 봉제공장으로 작동하다가 비워졌던 공간이 있었다. 소규모 저층 주거지와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곳은 동대문 패션단지에 저가 의류를 제조, 공급한다. 24시간에 기획부터 제작까지 가능한 높은 기술과 효율성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것 처럼 보여 한 때 뉴타운 바람이 불었고, 도시재생의 선도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관심 속 도시 재생이 아닌 산업적 동력이 필요하고 젊은 봉제인들이 이 곳에서 일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했다. 혹은 다른 방법이 있을 지 여러 고민을 건축가, 도시연구자, 패션디자이너, 영화 감독 등이 다양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다양한 직업이 서로 연대하여 작동될 수 있는 발전된 형태의 네트워크와 환경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또한 영국 출신 패션디자이너의 참여 또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왔다. 패션산업에 철학적인 접근으로 유명하면서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학교 중 하나인 영국왕예술학교가 전시 파트너로 선정됬다. 그리고 그 학교 출신 디자이너 2명 루크 스티븐스와 마리 메이조너브가 참여작가로 선정이 되었다.
필자 또한 이 패션디자이너들과 다시 창신동 답사를 여러번 왔고 공장 안팎에 너저분하게 쌓여있는 '봉투'들과 작은 공장의 적은 인부 수를 대신하는 대형 제단기계,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게꾼 등 다양한 모습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영국에 돌아와서 기계, 인간을 중심으로 한 가치의 사슬 구조에 대한 논의를 했고 이 방법의 지속가능성을 고민 했다. 이번 전시를 기회로 더 효율적 봉투를 만들까? 만약에 창신동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유니폼과 같은 장치-예를 들면 ‘지게옷’이라던지-를 만들면 어떨까? 등 다양한 논의를 왕립예술학교의 교수진과 워크샵을 통해 나눴다. 하지만 재밌게도 창신동의 많은 부분들은 시간의 노하우가 축적된 가장 효율적인 방법들이었다. 가볍고 방수까지 되는 봉투가 그렇듯, 이 너저분함을 읽는 따뜻함은 미학적으로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탄생된 창신동에 대한 이해가 녹여진 제목이 바로 <효율미학> 시리즈 작품이다.
효율미학 I - 루크 스티븐스
창신동에서 쓰이는 기존 비밀봉투 2종을 이용해 창신동을 해석했다. 옷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싸고 완성된 옷을 포장하는 두 종류의 비닐봉투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그래픽언어를 파악, 이를 확장시켜 새로운 디자인을 완성했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듯한 구호를 분석하고 이를 온라인 번역기에 돌려서 영문에서 국문으로 여러 번 바꾸며 현 세계 패션시장의 혼용성과 차용의 복잡한 연장선을 표현했다. 또한 스피드, 효율성을 강조한 스티븐스의 작품은 서울과 창신동을 다시금 이 글로벌패션 시장의 선두로 부각시켰다.
효율미학 II - 마리 메이조너브
마리는 지게꾼의 등위에 가득 쌓여있는 무게들을 감당할 지게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적 장치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작품을 시작했다. 그녀가 엑소스켈레톤/하니스에 대한 고민을 담아 디자인한 어꺠에 지는 장치에는 다양한 고리가 설치되어 있다. 그 고리에는 양국에서 만든 가방들을 매달을 수 있다. 그녀는 부드럽고 가장 가벼운 소재들을 창신동에서 구입하고, 런던과 서울에서 이를 제작하여 두 장소의 제작방법의 차이점을 비교함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노고를 덜기 위해 피부를 단단히 감싸는 듯한 보호기능을 추가했다.
효율 미학 III - 루크 스티븐스 & 마리 메이조너브
창신동에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팔에 차고 있던 '팔토시'에 주목했다.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반문이듯, 직접 그 토시를 제작 후 토시 위에‘멘트 상자’를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적게끔 했다. 위시트리처럼 전시장에 매달린 토시들은 창신동의 미래를 적어달라는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한다. 아카이빙 작업임과 동시에 장소적 공동체와의 생각을 공유하는 작업이었다. 토시란 어떤 이에게는 상처를 입으면 깁스를 하던 어린 시절을, 다른 이에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 문신을 가리는 방법이 연상될지도 모른다. 두명이 만난 이들에게는 토시는 여름에는 햇빛을 겨울에는 한기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고, 두 작가를 통해 창신동 노동자와 기계와의 역학관계, 그리고 자본주의 속 희석되는 휴머니즘을 표상하는 상징물로 재탄생했다.
보이지 않는 소리와 끊이지 않는 역사가 존재하는 창신동은 옷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메이조너브와 스티븐스의 해석에는 옷이 없다. 이들 작업은 <효율미학> 시리즈은 어쩌면 시장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로고와 같은 소리없는 구호”임을 보여준다. <프로젝트 서울 아페럴>은 7명의 작품이 하나로 어울어진다. 창신동의 공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킬 디자이너 협업공간을 만든 이지은, 어지러운 입면을 정리하고 24시간 돌아가는 창신동을 상징할 수 있는 파사드 작업을 한 조서연, 창신동 창업가이드를 만든 도시연구가 한구영, 실제로 이곳에서 옷을 만들고 아카이빙 작업을 한 정희영, 그리고 이를 하나로 묶은 백종관의 영상작업이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 두명 영국 디자이너의 작품이 나온다. 리좀(Rhyzome)처럼 얽혀있는 《프로젝트 서울 어페럴》안을 통해 지워진 것, 남겨진 것, 새로 쓰는 것이 공존하는 다양한 층계의 실체(Entity)로서의 창신동을 만나본다.
나에게, 전시란 또 하나의 예술이다.
김승민 큐레이터 (Stephanie Seungmi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