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의 배낭여행 여덟 번째 행선지
1. 말라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갔다. 후기가 좋아 예약한 호스텔은 말라게타 해변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도시라기보단 작은 마을에 더 가까운 말라가는 모든 것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말라게타 해변을 중심으로 상점과 시장과 편의시설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방에 짐을 두고 바로 해변가로 나왔다. 파랑 물결 위로 생뚱맞게 알록달록하게 솟아있는 정육면체는 바로 퐁피두센터. 파리에서 유명한 박물관과 갤러리는 대부분 가봤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퐁피두센터의 분점이 말라가에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미술관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에 조예가 깊다거나 날카롭게 분석하며 뜯어보는 편은 아니다. 학문으로서 예술을 배운 적이라곤 보스턴에서 교환학생 할 때 들었던 미술사 수업이 끝이다.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하게 된 건 오로지 장소 자체의 특성 덕인데, 예술을 ‘아는’ 사람들만 보라고 작품을 전시해 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의 배경이라던지 창작일화를 미리 알고 본다면 조금 더 풍부한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작가가 직접 작품 옆에 서서 미주알고주알 해설해주지 않는 한 작품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해지고 동시에 앎과 모름의 경계는 흐려진다. 기법이 어떻고 시대가 어떻고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이 작품은 왜 붓터치가 거칠고 왜 저건 유독 붉은색이 많이 들어갔는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재밌다. 이도저도 피곤하다 싶을 땐,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예쁜 그림 앞에서 멍 때리거나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좋다. 이게 내가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퐁피두에서 보낸 시간들을 특히 애정하는데, 퐁피두 컬렉션이 내 취향과 잘 맞을뿐더러 이곳은 관객들에게 무척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부연설명이 구구절절 옆에 달려있는데, 관람경험이 없거나 적은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로 풀어써져 있고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것’들이 사족처럼 달려있는 작품도 많다. 내가 갔을 때는 ‘A time of one’s own’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시간의 영속성과 유한성, 일상과 여가,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 중간에 한 템포 쉬어가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2. 말라가에 머무는 사람들은 스페인 다른 소도시에 비해 유독 젊다. 한적한 바다마을엔 어학원이 많은데, 이들은 잠시 쉬면서 바다도 보고 스페인어도 배우고 가라며 유럽을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자들의 어깨를 종종 붙잡는다. 도시의 활기 덕분인지 머무는 호스텔은 내가 가본 호스텔 중 가장 소셜라이징이 잘 되는 곳이었다. 루프탑에선 5유로만 내면 직접 만든 파스타를 저녁으로 먹을 수 있었고 샹그리아 한 잔까지 덤으로 끼워주는 굿딜이었기 때문에 매일 저녁 루프탑은 투숙객으로 복작였다. 샹그리아 한두 잔 하고 나면 금세 친구가 생겨있었다.
호스텔 펍크롤(한국어로 번역하면 ‘술집 도장 깨기’)에서는 버지니아에서 온 T와 R, 헝가리에서 온 B를 만났다. 우리는 각기 다른 호스텔에 묵고 있었는데, 사실 어떻게 말을 트기 시작했고 어쩌다가 친해졌는지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정신없는 펍크롤에선 지극히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마치 함께 여행 온 애들처럼 우리 넷은 말라가 시내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나이가 비슷한 탓에 각자 대학교 졸업예정-졸업-사회초년생 신분을 공유했고 덕분에 이야기는 끊일 틈이 없었다. 다들 가난한 학생 신분인 탓에 우리는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타파스 바에 들어가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모든 걸 4등분 하며 깔깔대기도 했고, 배를 두드리며 걸어 나와도 젤라또집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만난 지 일주일도 안된 사람들 속에서 난 안전함 편안함 그리고 안정감 같은 것을 느꼈고 내 운과 인복에 한없이 감사했다.
떠나기 전날밤, 우리는 해변 데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사 먹는 것보다 만들어 먹는 게 훨씬 싸다는 토마스의 현명한 판단 하에 손에는 미리 마트를 털어 사온 샹그리아 믹서와 레드와인 두 병이 들려있었고, 무식하게 섞어도 너무도 간단히 샹그리아가 만들어졌다. 어디서 가져온 지 모를 트럼프카드로 카드게임도 하고, 각 나라의 술게임을 너도나도 알려주기도 했다. 기분 좋게 취한 R이 이제부터 벌칙에 걸린 사람은 바다에 들어가 허리까지 적시고 오자고 제안했고, 결국 모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었다. 아직도 새벽 두 시 소리 지르며 바닷속으로 뛰어들던 달밤을 생각하면 아무도 없던 해변가에 울리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잔잔한 파도소리가 선명히 떠오른다.
3. 남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해변을 마주하게 되고, 그때마다 남들처럼 뛰어들어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늘 수영을 못한다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혼자 가면 해변가에 짐을 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마음 놓고 물속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방학 때마다 수영교실에 몇 번 다녔지만 짧은 방학 탓에 늘 자유형까지 배우고 그만뒀다. 그러고 다음 방학 때 다시 등록하면 이미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도 까먹은 뒤였다. 어른이 되어선 늘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시간도 용기도 잘 나지 않았다.
말라가에서의 평화로운 하루, B와 말라게타 해변가로 갔다. 몸을 적당히 태운 후 물속으로 들어가자던 보르치에게 사실 난 수영을 못한다고 수줍게 고백했고, 그 친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럼 내가 가르쳐주면 되지!
그날은 유독 파도가 잔잔했다. B가 먼저 시범을 보였고,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을 분리해서 알려주었다. 물 위에 뜨는 것도 무서워하던 나는 어린애처럼 그녀의 목을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절대 놓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성가실 법도 한데 B는 귀찮은 내색 하나 안 하며 친절하게 조목조목 알려줬다. 그녀는 과연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다. 몸을 파도에 맡겨. 파도는 네가 온 걸 알고 있어. 괜찮아 내가 여기서 잡고 있어. 내 등을 손과 무릎으로 받쳐두고 나를 끊임없이 안정시켜 주었다.
귀가 물에 잠기자 시끄럽던 세상이 고요해졌다. 찰랑거리는 수면 아래에서 오로지 내 심장소리만 크게 들리던 순간, 질끈 감은 눈을 뜨자 끝도 없는 하늘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처음 맛본 자유의 맛은 시퍼런 블루. 폐가 뚫릴 것 같은 청량함에 숨을 가득 마시고 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