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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니 Sep 30. 2023

젤라또보다 달콤했던 로마의 휴일

40일간의 배낭여행 세 번째 행선지

1. 파리에서 로마까지는 두 시간이 채 안 걸렸다. 전날 공항에서 밤을 꼴딱 새운 탓에 피곤이 몰려왔지만 이탈리아에서의 첫날을 어영부영 보내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후에 예정된 스페인, 포르투갈과 달리 이탈리아에 허락한 시간은 고작 로마 2일 피렌체 3일이었다. 떼르미니 역에 내려 집채만 한 배낭을 메고 걸어가려니 땀이 줄줄 났다. 설상가상으로, 날 놀라게 했던 것은 로마 길거리가 생각보다 너무 더러웠다는 것이다 (뉴욕과 파리보다 훨씬 더. 말 그대로 길가에서 쓰레기장 냄새가 나 더운 날씨에 고역이었다) 그 상태로 한인민박 입구를 찾는데만 30분이 걸렸다. 가까스로 올라탄 엘리베이터는 직접 문을 안에서 닫지 않으면 꿈쩍도 안 했다. 짐만 내려놓고 바로 나가려던 계획을 바꿔 체크인하자마자 전신 샤워부터 했다.


뉴욕 같은 호스텔에서 묵었던 친구를 통해 배낭여행자를 위한 왓츠앱 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도시별로 그룹챗이 있어여행지를 옮길 때마다 자신의 체류 계획이나 일정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남겨두면 일정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여행하거나 정보를 공유할  있는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였다로마로 날아오기  뉴욕에서 왓츠앱에  소셜 아이디를 남겨두었고 며칠  네덜란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L에게 연락이 왔다도착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난관에 계속 부딪쳐 약속시간에  시간 반이나 늦은 나에게 언니는 덕분에 빨래방에 들려 밀린 빨래도  했다며  웃어줬다이탈리아에 왔으니 피자에 파스타부터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L은 나를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데려갔고 그때 먹은 마르게리타와 바질 뇨끼는 감동적인 맛이었다.

로마 도착 후 첫 식사

L과 수다를 떨며 트레비 분수를 향해 걸어갈 때  눈앞에 거대한 대성당이 들어왔고 그녀는 이틀  가본 장소였지만 귀찮다는 내색 한 번 없이 같이 가줬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트레비분수 주변으로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녀가 며칠  맛있게 먹었다던 젤라토집에 찾아가 더위를 잠시 피했다.(어쩐지 동전은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던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걸어 콜로세움까지 갔고굳이 들어가 보진 않아도   같아 거기서 잠시 헤어져 나는 보르게세 박물관으로, 그녀 다시 구시가지로 향했다


 시간  다시 만나 L이 알아온 야경스폿인  천사성으로 걸어갔는데,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로마의 시내버스는   오는 법이 없다는  그때 알게 되었다. 삼만 보쯤 걸었지만 성에 도착했을  눈앞에 당장 펼쳐진 주황빛 노을에 불평조차 나오지 않았다. 트레비 분수도, 콜로세움도, 온갖 그리스 로마 조각상도 멋있었지만 로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녀 다정한 마음이었다.

성 천사성의 노을

2. 성 천사성에서 노을을 보고 돌아오는 길, 우연히 눈앞에 버스가 지나가 운 좋게 탈 수 있었다. 버스에 나란히 앉아 L과 저녁 메뉴를 한참 고르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더니 가족으로 보이는 네 명이 탔다. 그중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영어 가능해?”


“응, 무슨 일이야?”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다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이 가족은 브라질에서 왔고, 내게 말을 건 남자는 큰아들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 지도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우리가 가려던 식당 몇 정거장 전이 바로 역과 연결되어있길래 내릴 때가 되면 알려주기로 했다. 부모님과 작은아들은 영어를 못해 큰 아들을 통해 고마움을 전해왔고, 나도 멋쩍게 웃어 보였다. 역까지는 10분 정도 더 타고 가야 했다. 이탈리아엔 무슨 일로 왔냐고 그가 대화를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 연락처를 교환했다. 혼자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행운을 빌어줬고 가족은 한층 안도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언니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 핸드폰을 켰다. 아까 그 남자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Thank you very much!’

‘You girls saved us.’


사소한 친절에 돌아온 진심 어린 고마움에 나도 웃으며 답장했다.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어쩐지 쉽게 핸드폰을 끌 수 없었다. 다음날 내가 바티칸 투어를 예약했다고 하자 자기 가족도 내일 바티칸에 가기로 했다며 신기해했다. 가족 모두 유럽행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갈 곳들에 대한 계획을 이것저것 말하는 그의 문자에 가족에 대한 애정과 여행에 대한 설렘이 잔뜩 묻어났다. 한참 얘기를 하다 내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투어를 가야 하는 나는 이만 자러 간다고 했고, 그는 운이 좋으면 내일 마주치지 않겠냐며 농담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람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았던 바티칸 한복판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다시 만날 거라고 했지?”


3. 로마 두 번째날 저녁, 바티칸 투어에서 만나 친해진 한국인 동갑내기 친구와 어제 만난 L, 그리고 그녀의 두 친구들까지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구글맵에서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SNS에서도 자주 뜨던 유명한 시내 피자집에 갔는데, 웨이팅이 어마어마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기다리자며 무작정 줄을 섰다. 금방 줄어들 거라던  우리의 예상과 달리 30분이 지나도 줄은 꿈쩍을 안 했다. 덥고 배고프고 지치던 그때, 뒷줄의 사람들이 들고 있는 맥주병이 눈에 띄었다. 웨이팅을 음주로 승화시키다니, 너무 웃기고 신기해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너무 더워서 그러는데, 그 맥주 어디서 사셨어요? 맛있어요?”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친히 손에 지도까지 그려가며 설명해 주셨다. 자기도 너무 더워서 아들한테 사 오라고 시켰다며 옆의 남자를 가리켰다. 아들은 이탈리아 대표 맥주라고 해서 사봤는데 생각보다 별로라며 웃었다. 인상 좋아 보이는 두 사람에 갈증보다 지루함이 컸던 우리 무리는 아저씨 가족과 대화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부자 뒤에 어머니와 이모 등 네 명 정도가 더 있었다. 밴쿠버에서 여기까지 단체 가족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어제 베니스에서 막 넘어왔다며, 맛있었던 음식점과 좋았던 관광지들을 신나게 공유해주시기도 하고, 밴쿠버 나중에 꼭 놀러 오라고 애정을 듬뿍 담아 소개도 해주셨다.(한국에 ‘밴쿠버’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가 엄청 유명하다고 하자 눈을 반짝이며 정말 좋아하셨다) 혼자 여행하고 있고, 이 친구들 다 오늘 처음 만났다고 하니 놀라면서도 용기 있게 세상을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며 응원을 해주시는 모습이 마치 오랜만에 본 삼촌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무엇보다 아저씨 가족 모두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엄청난 긍정 에너지를 가지고 계셨다. 이렇게 기다려서 먹은 피자는 당연히 맛있을 거라고, 로마 시내 한복판에서 피자를 기다리며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부터가 너무 낭만적이고 신기한 일 아니냐며 말씀해 주신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느라 피곤한지도 몰랐다.

아저씨 가족과 우리 무리들

드디어 서버가 우리를 불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우리 일행이 먼저 들어가고 뒤따라 아저씨네 가족이 들어왔다. 두 시간 기다려 입에 넣은 피자는 아저씨 말 대로 천국의 맛이었다. 화장실을 찾으러 우리 테이블을 지나치던 아들은 우리를 향해 양손 엄지를 치켜드며 맛있게 먹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피자를 다 먹고 계산하려고 서버를 불렀는데, 서버는 이미 저쪽 테이블에서 계산을 마치셨다며 빙그레 웃었다. 너무 놀라 고개를 드니 아저씨가 저쪽에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같은 멋있는 여행자들을 만난  오늘 우리의 행운이야. 보답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어. 행복한 여행이 되길! 나중에 너희도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사람에게    대접해 . 그럼 정말 더할 나위 없겠다.
밴쿠버 놀러 오는 것도 잊지 !


맛있는 음식에 잊지 못할 따뜻한 기억까지 더해져 더욱 완벽했던 로마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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