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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04. 2023

일상이 회복되는 시간

상실(喪失)의 아픔은 꽤나 커서 한 번에 가시지 않는다.

소중하다고 생각한 무언가를 잃었다는 마음은 사물이나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둘의 공통점은 추억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함께한 시간은 물리적 속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속성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건, 단지 기억에 머무르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에 비례하여 상실감이 큰 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사용하던 물건과 1년 간 사용한 무엇을 둘 다 잃어버렸을 때, 무조건적으로 10년 동안 사용하던 물건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더 짧은 시간을 함께 하였더라도 기억을 넘어 쌓은 추억의 정도가 더 크다면, 1년을 사용한 물건에 더 애착이 가게 마련이다.


상실감 후에 찾아오는 건 언제나 그렇듯 후회다.

있을 때 잘할걸. 아니, 내가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조심했더라면 잃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란 감정은 시간을 거스르지만,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네 물리적 자아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마음으로 한탄하며, 스스로를 괴롭힐 수밖에. 이 순간, 일상은 흐트러진다. 흐트러진 일상은 후회를 넘어 자책이란 카드를 꺼내 든다. 다시, 자책은 일상을 흐트러뜨리고 삶의 악순환은 시작된다.


일상이 회복되는 시간은 얼마일까.

후회가 잦아들 때쯤? '상실감'이라는 감정이, '상실'이라는 기억이 될 때쯤? 그 기억이 조금 더 흐릿해질 때쯤? 답은 없다. 개개인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감정은 가늠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일상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거대하게 고여 있어 무어라도 포용하는, 바다와 같은 물 같이. 역동적으로 흘러, 스스로를 정화하는 강 같이.


흐트러진 일상은 '반복'을 시도하고, 하나 둘 그렇게 아픔 또한 일상이 되어 그것을 잊거나 또는 안고 우리는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을, 일상을 통해 치유받고 또한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순탄하지 않으며, 하루라도 어떠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으니. '무사(無事)하다'는 말의 존재는, 우리 삶이 무사하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나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고.


나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란 걸.


나이에 비례하지 않은 내 깨달음이, 나에게 후회란 감정을 살짝 떠다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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