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식으로 부를 쌓기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30대 중반이 되어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온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 첫 직장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기업 순위에서 다년간 상위권을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회사의 평판과 직원의 처우 등에 있어서 전혀 남부럽지 않은 조건이었다. 아울러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서장 및 선배들과 일했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의 커리어로는 더 이상 바랄게 없었다. 그러나 경력과 반비례하게 ‘과연 이 일이 내 평생 하고 싶은 일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가족과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모함을 동반한 도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도전을 무모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당시 갓 돌을 지난 아이가 있었지만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수입은 없고 지출만 발생하는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그동안 모았던 적금, 펀드 등을 깰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부족해 취업 후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자존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구직 활동에 전념하고 있을 때였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은 하나씩 일자리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80여곳이 넘는 회사에 지원하고 시간은 흘렀지만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한 회사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결과는 탈락의 연속이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대감은 불안감으로 변했다. 불안감을 뛰어 넘어 심리적 압박으로 인한 조급함과 무기력이 동시에 찾아왔다.
‘과연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아들 녀석이 베이커리 섹션에 있는 소라 모양의 초콜릿 빵을 사달라고 졸랐다. 몇 일 전에 사놓은 식빵이 집에 있던 것이 기억났다.
“집에 식빵 있는데, 왜?”
곧바로 아내의 표정은 굳어졌고, 아무런 말도 없이 물건이 담긴 카트를 그대로 둔 채 마트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아내의 행동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화가 나기도 했다.
“왜 그래?”
“정말 몰라서 그래?”
“응 모르겠는데? 말을 해줘야 알지”
“애가 빵 하나 먹고 싶다고 하는데 그냥 사주면 안돼? 집에 식빵 있다고? 지금 먹고 싶다고 하잖아. 어떻게 자기 자식이 먹고 싶다는데….”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렀다.
내가 식빵이 집에 있다고 이야기 했던 것은 수입이 없다 보니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빵 하나 사는 것도 쩔쩔매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고 초라하기 까지 했다. 그날 밤 그동안의 노력과 투자했던 시간을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메말랐던 나의 열정이 얼어붙었던 내 가슴 한 켠에서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