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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Aug 14. 2021

삐뚤빼뚤해도 원이 될 수 있어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명작, 미운 오리 새끼

  사람들에게 원(Circle)이 뭐냐고 물으면 “동그라미, 둥글둥글한 것.”이라고 답했다. “둥글다.”의 어원은 공의 모양을 닮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다음 그림을 보면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원과 다른 모양도 있다. 둥글다는 설명보다 더욱 엄밀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림 1>  공의 모양을 닮은 것들

  수학은 원을 고정된 한 점으로부터 최단 경로가 같은 점들의 모임이라고 말한다. 최단 경로란 무엇일까? 평면에서 두 점 A, B 사이의 최단 경로는 다음 그림의 빨간색 선분이며 두 점이 존재하면 최단 경로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그림 2> 평면에서 최단 경로

  고정된 한 점(A)으로부터 최단 경로가 2인 점들을 평면에 모두 나타낸 그림은 다음과 같다. 수학은 이렇듯 엄밀한 정의를 추구하기에 명확하다.

<그림 3> 원의 정의

   택시 기하학에서의 원은 평면에서의 원과 다르다. 택시 기하학(Taxicab Geometry)이란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민코프스키가 격자형 구조에서 최단 경로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기하학이다. 도로가 격자형 구조로 된 도시를 생각해보자. 도로망 한 칸의 가로, 세로의 길이는 각각 1이다.

<그림 4> 격자형 도로


   택시를 타고 A에서 B로 이동해야 한다. A와 B를 잇는 초록색 직선은 최단 경로가 아니다. 택시는 반드시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평면에서 최단 경로는 초록색 직선 오직 하나만 존재했지만 격자형 구조에서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경로 모두 길이가 12인 최단 경로이다. 실제 뉴욕의 맨해튼의 도로망 구조는 가로 방향(avenue)과 세로 방향(street)으로 구성된 격자형 구조이다. 그래서 택시 기하학의 최단 경로를 다른 말로 맨해튼 거리(Manhattan distance)라고도 한다.

   택시 기하학에서 원은 어떤 모양일까.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모눈종이를 준비하자. 모눈종이 한 칸의 간격은 1이다. 모눈종이 중앙에 고정된 파란 점으로부터 최단 경로가 2인 점들을 모두 찍으면 다음과 같다.

<그림 5> 최단 경로가 2인 점들

   모눈종이 한 칸의 간격을 가로, 세로로 한 번 나누면 한 칸의 간격이 0.5인 모눈종이가 만들어진다. 고정된 파란 점으로부터 최단 경로가 2인 점들을 모두 찍으면 다음과 같다. 

<그림 6> 최단 경로가 2인 점들

  모눈종이의 간격을 셀 수 없이 많이 쪼갠 후 고정된 파란 점으로부터 최단 경로가 2인 점들을 모두 찍으면 네 변의 길이가 모두 같은 정사각형을 볼 수 있다. 이 정사각형이 바로 택시 기하학의 원(Circle)이다. 평면에서의 원은 동그라미이지만 택시 기하학에서의 원은 네모다. 동그라미와 네모, 모두가 원이 될 수 있다.

<그림 7> 택시 기하의 원



  우리는 택시 기하학을 알지 못했기에 네모인 원이 무척 생소하다. 동그랗지 못하고 이곳저곳 각진 모습이 못생겨 보이기까지 하다. 농장의 동물들이 미운 오리 새끼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같다.



  엄청나게 크고 못생긴 회색 오리가 알을 깨고 태어났다. 농장의 동물들은 미운 오리 새끼를 보고 모두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저렇게 못생길 수가 있지?”, “너무 크고 이상하잖아.” 미운 오리 새끼는 농장의 동물들에 괴롭힘을 당한다. 단지 크고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사실 미운 오리 새끼는 백조의 새끼다. 농장에서만 자라온 동물들은 백조의 새끼를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을 테다. 내가 보기에 생소하고 꺼림칙하단 이유만으로 타인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그라미와 네모가 모두 원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미운 오리 새끼는 그저 동물들과 다른 모양의 원이었을 뿐이다.






    “여기 좀 와봐요! 누가 보면 여기 오리가 부족한 줄 알겠어. 또 새끼들이 태어났네. 게다가 살면서 저렇게 못생긴 오리는 처음 보잖아? 우리 농장과 어울리지 않아. 더는 못 봐주겠군.”

  멋진 벼슬을 가진 닭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서더니 회색 오리 목을 콱 물었다. 그때 한 오리가 소리쳤다. “당장 그 애를 내버려 둬! 도대체 그 애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지? 벼슬을 가지면 다인가.” 그 오리는 서둘러 회색 오리에게 다가갔다. 세게 물렸던 탓일까. 회색 오리의 목덜미엔 피가 맺혀있었다. 오리는 헝클어진 회색 오리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안녕, 반가워! 넌 나와 다른 모양의 원이구나.” 회색 오리의 눈가는 어느새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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