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되지 않는 것들
“너 파마했어?”
속 모르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조금 예민해진다. 잠자던 내 머리털을 건드려?
내게 곱슬머리는 콤플렉스 그 이상인데, 뭐랄까 태초에 존재부터 잘못되었다는 감각 같은 거다. 나의 오래된 외적 수치심. 7살 때쯤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내 머리카락은 남들과 다르다는 걸.
가만있어도 잔머리가 미친 듯이 부풀어 올랐다. 습기 찬 날에는 더욱 방방 떠서 엄마가 꽁지머리로 짜매줘도 소용이 없었다. 잔머리들이 내 이마와 귀 쪽을 가리며 얼굴까지 우그러져 보이게 했다. 곱슬머리는 과학 시간에 배운 신체 부위의 융털같이 생겼다. 책상을 내려다볼 때 내 머리카락이 같이 보이면 그걸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머리도 단정하게 안 되니 방 정리도 엉망이었다. 청소를 잘 안 하는 성향도 다 머리 탓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애들과 잘 못 어울린 적이 있는데 그것도 곱슬 때문 같았다. 애들은 자기들과 다른 특성을 보면 이상하게 여겼다. 곱슬머리는 너무 튀고 잘 보여서 나는 소외감과 부끄러움을 잘 느꼈다. 애들이 놀리면 구부러진 채로 속상해했다. 10살쯤 되자 <해리포터> 소설책이 유행하기 시작하며 내 별명이 ‘해그리드’가 되었다. ‘헤르미온느’라 불러주는 애들에겐 감사할 지경이었다. (나중엔 사극 드라마 <추노>가 되었다.)
사람에겐 ‘머리빨’이란 게 있는데 내 경우엔 본판 점수도 머리가 다 깎아 먹었다. 예쁜 생머리 연예인들과 친구들을 볼 때마다 시무룩해졌다. 다시 태어나도 가질 수 없으니까. 남들에게 ‘아, 곱슬머리 걔?’라고 불리면 다른 특징들은 지워지고 외모 성질만 남겨진 것 같았다. 애초에 곱슬 유전자를 물려준 아빠부터, 분노는 위로 거슬러 갔다. 할머니, 증조부모, 윗대 선조들. 이 유전자의 시초가 누구였을까. 인도 허황후처럼 외국에서 건너온 인물일 수도 있다. 곱슬 인구가 많은 서양에서 태어났다면 괜찮았을 텐데... 직모가 대부분인 동양, 한국에서 태어나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다니.
물론 머리를 펴는 매직 시술도 여러 번 받았지만 이틀 만에 원상 복구돼서 돈만 수십만 원 날렸다. 미용실에 가면 항상 타박을 들었다. 그들은 머리 전문가라면서 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 손님. 머릿결 관리 너무 못하셨다. 매직해 보는 게 어때요?"
내가 안 해봤겠어요? 바를 수 있는 모든 헤어 제품을 다 써보고 대학생 땐 생머리 가발까지 썼는걸요. 우주도 가는 과학 시대에 왜 곱슬은 못 고칠까요? 우주처럼 심오하게 구불거리는 머리가 내 인생에 펼쳐질 굴곡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머리 한 움큼을 부여잡고 계속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조금 펴지기라도 할 듯이.
곱슬은 머리에서만 나는 건 아니었다. 또 새로운 게 생기고 있었다. 그맘때쯤 생각나는 여름의 장면들이 있다. 춘추복과 하복을 입은 애들이 섞이더니, 우리 반은 어느새 하복 천지가 됐다. 나는 하복 상의 단추를 풀고 안에 반팔 티셔츠를 입어서 레이어드 효과를 냈다. 선풍기 아래에 앉은 아이들은 책상 위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선풍기를 껐다 켜야 했다.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고 온 반 남자애들의 땀 냄새가 진해졌고, 여자애들이 얼굴 하얘지도록 바른 선크림은 땀으로 맺히다가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등골에도 땀이 주룩 흐르는 걸 누가 볼까 봐 신경 쓰이는 6월이었다.
월수금 2교시엔 영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강의 중에 칠판을 손으로 쾅쾅 두드리는 열정적인 교사. 하필 그녀는 짧은 반팔을 입었고, 겨털은 수북했다. 반 애들은 웃음을 참기 바빴다. 특히 앞줄 애들은 서로 빨개진 얼굴을 쳐다보면서 키득거렸다.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팔뚝과 털을 휘날렸다. 영어 시간 알파벳 모양으로 그려지는 지휘 같았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면 애들이 낄낄댔다. “오늘 더 많아진 거 같지 않냐?” “거의 나시를 입으셨던데” “폭포수 같애.” “아마존 여전사다.” 자기들은 겨털이 한 번도 안 나본 것처럼 굴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중2, 열다섯 여학생인 내 겨드랑이에도 그것이 한창 자라고 있었기에. 없애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지, 제모 크림을 바르면 되는 건지, 그건 얼마나 아플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미스터리 같았다. “엄마, 겨털 어떻게 없애?” 하면 엄마는 “나는 안 깎는데? 너도 그냥 있는 채로 살아.” 했다. 다른 애들을 관찰했지만 나처럼 많아 보이는 여자애는 없었다. 쟤는 눈썹도 얇고, 쟤는 다리털도 없네 부럽다. 오직 털, 털! 만이 눈에 보였다. 내 털은 더 자라 반팔 밑으로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날엔 교실 뒤편 거울을 보며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팔을 너무 올렸나 생각이 들 때쯤, 반 남자애 김준희와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홱 고개를 돌렸다. 뭐야, 찝찝하게. 목격자를 처단하고 싶었지만, 내 교복 반팔만 밑으로 쭉 땡겼을 뿐. 다음날인가 뒷자리 남자애가 내 등을 샤프 끝으로 콕 찔렀다.
“아씨, 왜?”
“야. 너도 겨털 있다며? 개 웃겨.”
“뭐? 누가 그래.”
“몰라 김준희였나. 넌 좀 깎고 다녀.”
나는 뒷자리 놈을 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옆 분단 김준희를 째려봤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그걸 소문내다니! 내 눈을 피하는 그의 얼굴이 빨개 보였다. 난 김준희의 치부도 찾아내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체육 시간이나 음악 시간 리코더 불 때 지켜봤지만 겨털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았고, 남자 하복 바지는 길어서 다리털도 안 보였다. 걔를 계속 보니 해사하게 생긴 것 같기도 했다.
하루는 여성 잡지 ‘쎄씨’를 읽고는, 로드샵에서 제모 크림을 샀다. 방바닥에 앉아 땀을 삐질 흘리며 사용법을 읽었다. 크림을 겨드랑이와 다리에 덕지덕지 바르고 심호흡을 한 다음, 털이 붙은 테이프를 쫙 뜯었다. 아 따거! 여름이 올 때마다 이 짓을 해야 한다면 난 망했다. 머리카락도 뜯고 싶었지만 참았다. 며칠은 벌긋해진 종아리와 겨드랑이에서 화한 감각이 느껴졌고 선풍기 바람에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김준희와 가끔 눈이 마주치면 나는 티 나게 쌩하고 지나쳤다. 화장실을 같이 가는 친구는 묘한 기류를 눈치챘는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면서 친구와 학교 매점에 매일 갔다. 아이스크림 종류는 몇 개 없었지만 잠시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그날도 쉬는 시간에 줄을 서는데 간식을 사고 나오는 김준희랑 마주쳤다. 걔는 나를 보더니 손에 들린 뽕따 두 개 중 하나를 내 손에 던졌다. 내 옆에 있던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날 찔렀다.
“너 쟤한테 뭐 해줬어? 왜 아이스크림을 주는 건데?”
“몰라 나도.”
해준 거라면… 좋은 구경거리를 준 거겠지. 운동장으로 걸어가는 찰나에 아이스크림이 녹으려고 해서 벤치에 앉아 급하게 뜯었다. 뽕따 꽁다리를 꺾어 친구의 빠삐코 꽁다리와 바꿔 먹었다. 언 부분이 서걱거렸다. 벤치는 나무 아래에 있어 잎들이 빼곡한 틈으로 햇살을 쬐었다. 여름만의 부끄러움과 짜증도 조금 녹아내렸다. 하늘 맛의 소다 색으로. 문득 춘추복을 빨리 입고 싶어졌다.
그 후로 김준희 얼굴이 자주 떠올랐다. 나한테 왜 아이스크림을 준 걸까? 한 번은 김준희가 내게 말을 건 적이 있다. 내 눈을 안 쳐다보고 책상 모서리만 본 채로. 혹시 오해하는 거면 자기가 소문낸 거 아니라고. 그럼 날 왜 쳐다봤어? 따져 물으려다가 알겠다고 얼버무렸다. 그 후론 접점이 없어서 계속 어색하게 지냈고, 나는 가끔씩 겨드랑이를 밀었다.
개학하고 더위가 물러갈 무렵이었다. 친구 몇 명과 교실에서 분신사바를 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하고 귀신에게 물었다. 나와 친구가 맞잡은 손이 천천히 미끄러지며 원을 그렸다. 구불거리는 선으로 넉넉하게. 내 마음은 구불거리지 않고 제대로 전달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그만 손을 삐끗해서 선이 원 밖으로 탈출해 버렸다. 나와 친구는 어두운 교실 밖 복도를 걸으면서 내내 찝찝해했다.
물론 이때는 전혀 몰랐다. 나중엔 분신사바 결과대로 김준희와는 금방 멀어진다는 것을, 대신 먼 훗날 내 구불거리는 털들을 좋아해 주는 남편이 생긴다는 것을, 뽕따 같이 차가운 쭈쭈바는 안 먹게 된다는 것을, ‘모아나’라는 적절한 곱슬머리 레퍼런스가 나타난다는 것을, 훌라 댄스를 배우면서 내 몸을 좀 더 긍정하게 된다는 것을. 사춘기 때는 내 굴곡들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었다. 미래에 발명될지 모를 곱슬 치유 약만을 원하고 기다렸다. 내가 상상할 수 있던 최선의 것은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