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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Oct 11. 2024

질문 3종 세트

사랑이 장난



우리는 계속 ‘왜?’를 묻고 점검하는 스타일이다. 메타인지를 계속하는 타입이랄까. 대화를 하다가도 “왜 거기까지 가는 거야? 다시 돌아와.” “우리 왜 이 대화를 하고 있는거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점검하고 주제를 정상으로 되돌린다. 대화를 깊이 만들어가는데 둘 다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 주제를 깊이 파면 더 재밌고 풍부해지고 농담도 나오니까. 되도록이면 나에게서, 사회에서, 상황에서 왜를 묻고 호기심을 가지려 한다. 


그중에서도 지호는 ‘질문 3종 세트’라는 짜증 유발법을 가지고 있다. 일명 꼬투리 질문법.  


“우리 ‘왜’ 질문법 하자.” 

“왜? 그게 뭔데?”

“왜냐고 계속 물어주는 거지. 너는 여행을 왜 해? 행복하기 위해서? 도파민 분비를 위해서?” 


왜 질문법은 지호의 시그니쳐 화법인데, 계속 캐물어서 진짜 마음을 꿰뚫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진저리 칠 수도 있겠다. 나는 나를 알아가는 걸 좋아하므로 이 자아 성찰적인 행위에 홀딱 빠졌다. 왜?를 반복해서 듣다보면 아무리 짜증 나고 우울해도 어이없어서 웃게 된다. 왠지 모르게 허를 찔리는 기분 탓일까. 


안 웃겨도 3번을 반복하면 피식 웃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거의 이래도 안 웃냐고 강제하는 수준이다. 가령 내가 기분이 안 좋다고 하면 지호는 연속으로 묻는다. “왜? 왜? 왜?” 나는 세 번까지는 참다가 그 이상 물으면 짜증을 낸다. “아 그만해! 알았어! 에잇 짜증 나.” 나는 짜증을 내느라 왜 기분이 나쁘고 우울했는지 잠시 잊어버린다. 




두 번째는 ‘좋지?’ 강요 화법. 이건 좋은 기분을 세뇌하는 긍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답은 정해져 있지만 끝에 물음표를 붙인다는 점에서 질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최소 2번은 연달아 물어야 효과가 있다. “좋지? 좋지?” 

같이 있으면서 좋은 순간을 나누고 교감하고 싶다는 뉘앙스도 있고, 기분이 좋지 않아도 세뇌하면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지금 겪는 장소나 시간에 대해 별생각 없다가도 ‘좋다’라는 단어가 주어지면 자연히 좋은 방향으로 생각이 흐른다. 진짜 좋은 상태 같다고 믿게 된다.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슬기로운 질문법이다. 




마지막으로 육하원칙 화법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누가, 왜, 어떻게. 지겹게 배웠지만 우리가 기자도 아니고, 실제 쓸 일이 많진 않다. 그래서 상대가 이것을 시전하면 허를 찔리는 기분이 들고 뜬금없게 느껴진다. 면접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서 꼬리 잡는 질문을 6번 연달아 당하는 것처럼. 



“나 울었어.”라고 하면 지호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데, 가끔은 속사포로 이렇게 묻는다. “언제 몇 시에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여러 질문이 쏟아지면 우울할 새도 없이 눈물이 쏙 들어간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집요한 이 질문 감옥에 한 번 갇혀보시라. 그럼 내 감정에 몰입돼 있어도 거리감이 생긴다. 감정이 빠져나오고 이성으로만 내 상황을 분석해 보게 된다. 



 질문 3종 세트의 공통점이 또 있다면, 꼬투리를 잡음으로써 깊이 들어가는 거다. 우리는 반복을 통해 표면에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끈질기게 파다 보면 오히려 그 문제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예상치 못한 질문의 반복을 통해 원래의 감정을 극복하는 것이다. 내가 왜 우울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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