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장난
서울대병원에 난생처음 가게 됐다. 내가 다친 창덕궁 앞쪽에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거기였다. 오후 12시쯤 지호와의 데이트 약속에 조금 늦었고, 빨리 보려는 마음에 뛰다가 보도블럭에서 넘어졌다. 정말로 ‘쾅!’ 소리가 크게 났다. 하도 세게 박은 데다, 무릎을 박은 곳이 하필 동그란 요철이 툭 튀어나왔던 보도블럭이라 내 무릎이 동그랗게 파였다. 피가 가득 고이고 뼈가 약간 보일 정도로 크게 찍혔다. 너무 아파서 주저앉은 채로 앓고 있으니 지나가던 아저씨들이 다가왔다.
“아이고 여기 턱이 있어서 진작 민원을 넣어야 했는데. 여기서 넘어지는 사람 많아요.”
하면서 사진을 찍어가셨다. 동네 주민이신 모양이었다. 민원을 넣어주신다니 그저 고마웠다. (나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나중에 팔로업을 못했다.) 지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상처를 보고 헉하고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택시를 타고 같이 응급실에 갔다. 나는 계속 ‘으~~’ 하며 스스로를 징그러워했고, 지호는 징그러워하는 동시에 안절부절못했다.
의사가 상처를 꼬매는 동안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응급처치가 끝나고 지호는 10만 원이 넘는 응급실비를 망설임 없이 계산했다. 만난 지 몇 달 안 됐는데 앞뒤 생각 안 하고 나선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아무래도 무릎을 다치고 정신머리도 다쳐버린 것인지, 그 난리를 겪고서도 집에 바로 가지 않았다. 절뚝거리면서도 지호와 카페에 앉아 빙수를 먹고 서대문 쪽에 가서 영화까지, 할 거 다 했다. 어차피 응급처치는 해뒀고, 세심히 부축받고 케어받는 기분이 좋아서 더 머무르고 싶었다. 또, 집에 가면 상처의 아픔이 덧날 것 같았다. 연인을 만나면 좋은 호르몬이 나오니까 회복에도 좋겠지? 라며 합리화를 하던 우리. 지호도 평소보다 재롱을 피우며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내가 앉아 있으면 평생 끌어주겠다고 했다. “할머니 ~ 산책할 시간이dp요~”
그는 창덕궁 근처에 휠체어 대여 서비스가 있는지 알아보고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나는 일시적으로 다친 것뿐이지만, 장애우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외국인도 많이 오는 관광지인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의 가능성보다도 휠체어를 상시 이용 못 하는 게 더 문제 아닌가…? 무릎에 구멍이 나자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의 구멍들도 더 잘 보였다. 길바닥에 파인 채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구멍들을 더 주의깊게 봐야겠다.
지호와 나는 구멍을 메우려는 연인들처럼 붙어 앉아 힐링했다. 나란히 옆구리를 붙이고 안으니, 상처에 연고를 채워 넣는 것 같았다. 휠체어를 구하지 못한 우리는 느릿느릿 카페에서 영화관으로, 영화관에서 택시 정거장으로 움직였다. 이인삼각 게임을 하듯이 매순간이 협동이었다. 서로의 몸과 협응하는 훈련. 드디어 저녁이 되어 지호가 같이 택시를 타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지막까지 아련한 컨셉을 잡으며 헤어졌다.
“우리 ‘마지막 잎새’ 같다. 현대로 온 마지막 잎새… “
“이제 데이트 필수코스는 서울대병원이야.”
“그래. 다리는 두 개니까 하나만 다친 게 어디야.”
민정 : 내 생일 선물로 전동 휠체어 사줘 이제.
지호 : 민정이 유리구슬 같애. 조심조심 다뤄야 하는…
민정 : 근데 데이트하면서 너가 날 더 망치고 있어. 다친 쪽 무릎이 어딘지 헷갈려서 계속 너도 모르게 치고 있잖어.
지호 : 악 미안… 오른쪽 무릎은 내가 지켜줄게. 다리 다 나으면 나머지도 부러뜨려줘야지~
민정 : 윽 싸이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