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우중충하다가 잠깐 갠다면
내가 스코틀랜드에 간 건 남편의 추천이 있어서다. 그가 예전에 갔던 곳인데 아주 좋았다고, 영국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고. 그게 대체 뭘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여행하고 나면 그 나라에 애정과 관심이 (보통은) 생기게 되고, 역사에 대한 이해도 는다. 그 나라 역사가 다차원적인 공간을 통해 인식이 되기 때문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땅을 밟으면 여기 살던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스코틀랜드엔 벽마다 낙서들이 많았다. 그래피티나 그림 예술까진 아니고 강한 힘으로 써 내려간 큰 글씨들. 수도 에든버러는 높은 지대와 낮은 지대로 나뉘어 있었다. 높은 지대 산 위엔 호그와트처럼 생긴 고딕풍 에든버러성이 있다. 낮은 지대로 내려가는 계단 구간 벽들에 글씨들이 빼곡했다. 뾰족한 필체로 보아 어딘가에 저항하는 듯했다. ‘Fuck the queen’ 문구가 보였다. 그 정도로 스코틀랜드는 반영 감정이 강하다.
한국에 돌아간 후엔 멀리서 온 소식을 접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망 소식. 뉴스들은 각 나라의 추모 분위기도 함께 전달했는데, 스코틀랜드는 그리 슬픈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이라면… 직접 분위기를 느껴봤기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사망 자체엔 예우를 갖추지만, 한국인들이 일본 우익의 죽음에 슬퍼할 수만은 없는 것처럼. 스코틀랜드는 몇백 년에 걸쳐 독립을 주장해 왔고 박해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영국도 다녀왔는데 왜 유독 스코틀랜드에 이입할까? 런던보다 스코틀랜드에 하루 더 체류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더 성숙한 사고방식과 지식이 생긴 나이대에 가서인 것 같다. 내 런던 여행과 스코틀랜드 여행 사이엔 8년의 시차가 있다. 그사이 나는 꽤나 성장했다. 유럽 역사를 더 공부한 건 아니지만, 사회가 굴러가는 것과 관계성을 파악하는 면에서 훈련이 된 것이다.
영국의 세련된 문화를 먼저 보고, 그 이면엔 뭐가 있었을지 다른 나라에서 알아본 경험도 좋았다. 왜 두 집단이 이런 관계가 됐는지 이해하기에 책보다 살아있는 지식으로 와닿았다. 물론 스코틀랜드에서 역사만 배운 건 아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위스키를 마시며 즐겼다.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수도 에든버러보다 북쪽, 하이랜드로 2박 3일 투어를 떠났다. 20명가량의 일행을 통솔한 가이드는 50대 남성 스티븐이었다. 스코틀랜드-스티븐. 그는 조선시대 선비처럼 수염을 역삼각형으로 길렀고 얼굴은 빨갛고 킬트(kilt)라 불리는 스코티시 스커트를 입었다. 체크무늬에 무릎 정도까지 오며, 종아리를 덮는 반 양말을 신었다. 그는 활달하고 말이 많고 목소리가 컸다. 그런데도 그의 말을 30% 정도밖에 못 알아들었다. 스코틀랜드 방언은 영어 사용자들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쓰는 단어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인데, 한국으로 치면 제주 방언쯤 된다. 나는 최대한 알아들으려고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예를 들어 ‘에든버러’는 현지인 말투로 ‘에딘버라-ㄱ‘, ‘웨어 where’는 ‘웨아’로 발음. ‘워터 water’는 ‘워타’. Beautiful은 버니로 말하고, Don’t do는 D로 줄여 말한다. 스티븐에겐 특이한 언어 습관도 있었는데 이건 그만의 습관인지 모르겠다. 나를 Lovely라 부르고, 할아버지 투어원에겐 ‘Yes, my child-‘하는 거였다. 모든 사람을 귀엽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럴만한 게 그는 190cm쯤 돼보이는 거구에다, 바깥 날씨가 흐리고 추워 죽겠는데 반팔을 입고 다녔다. 지금 9월은 바비큐 할 법한 날씨, 여름이라고 했다…
호탕한 그는 버스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음악을 틀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가수가 누군지 맞추게 하는 퀴즈도 냈다. Ac/DC, Red hot chilli pepper 등 대체로 좀 센 음악이었다. 인기 스포츠인 럭비도 강하게 몸싸움하는 스포츠이고 말이다. 모두 스코틀랜드의 거친 자연환경과 연관이 있나…?
차 안에서 보는 산들은 우중충해보였는데 날씨 때문인 듯했다. 계속 흐린 와중에 산악 지형들에선 힘이 느껴지고 고풍스러웠다. 에든버러에서 사람이 적은 북쪽으로 달릴수록 오두막들이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뜨문뜨문 서 있었다. 그 와중에 글렌피넨 모뉴먼트는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행 기차가 달리는 광경을 촬영한 곳으로, 타이밍 좋게 영화 속 장면처럼 기차가 지나고 있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저 멀리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투어원들은 각자 탄성을 지르다가 점점 친해졌다. 삼나무 숲에서 우리의 가이드 스티븐은 우리에게 즉석 상황극을 시켰다. 여자 중 피오나 역할을 고르고, 남자 중 동키 역할을 골랐다. 랜덤으로 두 사람이 뽑혀 즉석 결혼식을 거행했다. 둘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나머지는 박수치는 하객과 들러리가 되어 크게 웃었다. 다음 순서는 계곡물에 얼굴을 담그는 게임(!)이었다. 아무도 벌칙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스티븐이 시범으로 보여주니 몇몇 승부욕, 개그 욕심 강한 남성 투어객들이 따라 얼굴을 담갔다. 손만 담가도 1분 이상 못 버틸 차가운 물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났을 것이다.
아일 오브 스카이 Isle of Sky, 스카이섬에 가니 이름처럼 하늘이 청량한 색으로 변했다. 거대한 산, 구름이 이어지는 태초의 자연 같았다. 산과 바다와 들, 주상절리와 폭포 사이에 걸리는 건축물이 없고 자연뿐이었다. 근처엔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타임슬립 물 <아웃랜더>를 떠올리게 하는 돌무덤도 있었다. <아웃랜더>는 18세기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시기로 가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인데, 비석 같은 긴 돌에 몸을 대고 타임리프를 한다. ‘클라바 돌무덤 Clava Cairns’ 벌판에는 마법진, 비석같이 생긴 돌들이 원을 그리며 꽂혀 있다.
4,000년의 세월을 견딘 돌들이다. 이 돌로 된 원들이 천문 달력의 일부였을지, 망자를 기리던 장소였을지 확실히 알려져있진 않다. 나는 일단은 시간 여행을 하고 싶어서 돌을 만져봤다. 손바닥으로 폭 덮으니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한동안 그렇게 체온을 전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언제로 가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여행하면서 때때로 의심했다. 지금 퇴사를 하고 와서 이렇게 다 즐겁고 신기한 걸까? 내가 객관성을 잃은 걸까? 의심할 만큼 이곳이 단박에 좋아졌던 거다. 스코틀랜드가 유독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좋은 투어 구성원 및 가이드와 함께해서, 광활한 자연에 더해진 으스스하고 시크한 분위기가 다른 나라와 다르게 신비롭고 이국적으로 느껴져서. 사람들이 아주 흔하게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는 희귀성도 있고, 독립운동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역사적인 장소는 컬로든 Culloden 전투가 벌어진 대평원이었다. 시종일관 쾌활하던 스티븐은 이곳에서만큼은 엄숙한 분위기로 진지하게 설명했다. 우리도 두 손을 모아 경청했다. 컬로든 전투는 1746년 하이랜드의 자코바이트 반란군과 브리튼 왕국(영국) 간 최후의 전투였다. 전력 차이가 너무 컸고, 전쟁터 한쪽에서 반란군의 아내와 아이들도 그걸 보게 했다고. 1시간 안에 대패하여 2,000명 정도가 사망했다는 전투. 죽을 걸 알면서도 참전한 스코틀랜드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이곳에서 타임슬립을 하는 상상을 했다. 독립에 필사적인 반영 감정이 깊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 이 평원에선 비명 소리가 들리진 않는다. 그저 고요하고 황량한 바람만이 불었다. 나는 그 이전 시대에 역시 영국군에 학살당한 글렌코 대학살을 노래한 음악을 들으며 착잡한 마음으로 걸었다. (The Corries의 ‘The Massacre of Glencoe’) 감정을 절제한 창법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오히려 절절했다.
기념품점 앞에 심심하게 서 있던 스티븐에게 슬쩍 가서 물어봤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실제로 거의 다 바라나요?”
“현지인들은 거의 다 그래요. 나 역시 독립을 바라고요. 한번 독립할 기회가 있었는데 투표에서 살짝 밀려서 무산됐어요. 하지만 노력을 멈추진 않죠.”
“그렇군요. 저희 한국도 일본에 박해를 받았고 독립운동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역사와 독립운동에 많이 공감이 돼요.”
“오, 잘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마워요. 공감해 준 덕분에 언젠가 독립하겠죠."
단지 이웃해있다고, 예전에 한 나라였다고해서 억지로 뭉쳐지는 건 아닌 듯하다. 본인들이 다른 민족 정체성, 영혼과 국민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한 국가의 이름으로 합쳐놓을 수는 없다. 중세 시대부터 스코틀랜드인들은 국가를 좀 더 구체적이고 협소한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기념품점에서 책자를 잠깐 훑어봤는데, 가문별로 족보 책자가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가문, 혈통 중심의 사회였다. 가문별로 문장과 시조 탄생 설화가 적혀있는 것들이 흥미로웠다.
이번 투어로 스코틀랜드의 속살까지 느낄 수 있었다. 어디 가서 현지인 가이드가 선곡한 스코티시 음악들을 들을 수 있을까? 백파이프 소리에 흠뻑 빠져 이제 듣기만 해도 울컥할 정도다. 전생에 스코티쉬였나 싶다. (아일랜드에선 전생에 아일랜드인이었나 생각했지만.)
스카이섬을 구경했을 때, 광장에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Independent 부스가 있었다. 천막에 그려진 국기는 영국 것이 아닌 그들의 고유한 것이었다. 파란 배경에 X자로 교차한 흰색 띠. 파란 배경은 스카이섬의 하늘을 닮았다. 나는 부스에 다가가 지지의 의미로 스티커를 붙이면서 뭉클함을 느꼈다. 언젠가 스코틀랜드가 ‘탈 영국'하여 독립하길, 스티븐이 소망을 이루길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