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말 아래 숨은 가시
처음엔 그냥 지친 말투라고 생각했다.
서운해서, 무심해서, 아니면 피곤해서…
그렇게 합리화했다.
“사랑받고 싶으면, 우리 엄마한테 잘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통과의례 같았다.
그 집의 마음을 얻어야, 그 사람의 마음도 가질 수 있는.
“예뻐해주고 싶지. 근데 네가 예뻐야, 예뻐해주지.”
나는 감정이 아닌 겉모습으로 평가받았고,
사랑은 조건부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늘 불합격이었다.
“애기 낳고 싶다 해서 결혼한 거잖아. 감수해.”
내 선택은 내 족쇄가 되었고,
사랑은 ‘네가 원했잖아’라는 말 한 줄로 모두 지워졌다.
그 말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 감정을 의심하게 됐다.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내가 예민한 게 아닐까.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작아졌다.
우리는 혼전임신이었다.
나는 설렘보다 책임으로 결혼을 택했고,
그 책임 앞에 신혼이란 말은 애초에 없었다.
결혼식 다음 날부터,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 집안의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아내가 아닌, 시집의 행정원이 된 듯한 기분으로.
그리고 만삭.
30kg 늘어난 몸을 감싸 안은 채,
나는 하루하루 더 투명해지고 있었다.
“아무리 만삭이어도 너랑 손이라도 잡고 싶겠니.
네가 살쪄서 내 아들이 바람피면, 그건 네 탓이다.
보다 못 봐주겠다 얘.” — 시어머니의 말이었다.
그날, 나는 사람이 아니라 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한 사람의 여자가 아닌,
눈치와 몸무게로만 존재하는 무게가 되었다.
마음이 아닌 몸을 잴 수 있다면,
나는 그 집에서 제일 무겁고, 제일 투명한 존재였을 것이다.
잡고 싶은 손이 없었다.
그래서 내 손은 늘 허공을 맴돌았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천천히 부서지고 있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말들이
사실은 가시였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그땐 몰랐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그 표정 하나,
그 침묵이 나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결혼은 나를 여자로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는 천천히 부서지고 있었다.
다음 화 예고
외전. 엄마라는 온기
“그 무섭고 서러웠던 집에서
너무 차갑게 남겨진 시간에도
아기만이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감정에세이
#가스라이팅
#사랑의이름으로
#혼전임신
#결혼의민낯
#브런치작가
#다시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