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의 ‘깊이’와 ‘넒이’
피해의식은 강렬하다. 이는 피해의식에 휩싸이면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이 어려울 만큼 감정이 격양된다는 단순한 의미만이 아니다. 피해의식의 강렬함에는 ‘깊이’와 ‘넓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피해의식의 ‘깊이’와 ‘넓이’는 무엇일까? ‘깊이’는 마음과 관계되어 있고, ‘넓이’는 삶 전반에 관계되어 있다. 즉, 피해의식은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이’ 들어와 작동하는 동시에 한 사람의 삶 전반에 ‘넓게’ 작동한다.
돈에 관한 피해의식이 있는 이를 생각해보자. 그는 부자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근거 없는 분노와 적대감에 휩싸이곤 한다. 이는 피해의식의 ‘깊이’ 문제다. 그의 돈에 대한 피해의식은 마음속 ‘깊이’ 침투해 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침투한 피해의식은 그것이 자극되는 어떤 지점에 이르면 격렬하게 반응한다. 마치 내부 깊은 곳에 균열이 난 건물에 작은 자극을 주면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져버리게 할 만큼의 금이 가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피해의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고, 악착같이 커피 쿠폰을 챙기며, 작은 물건을 하나 살 때도 몇 시간씩 가격 비교를 하고, 급여를 더 주는 일자리가 있는지 늘 두리번거린다. 이는 피해의식의 ‘넓이’ 문제다. 그의 피해의식은 삶 전반을 넓게 지배하고 있다. 그가 인지하고 행동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삶 전반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마치 빨간색 색안경을 끼면 삶 전반이 모두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가질 만큼 강렬하다.
‘의식’은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
왜 피해의식은 이처럼 강렬한가? 피해의식이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에는 명료한 ‘의식’(합리‧논리‧이성)과 혼란한 ‘무의식’(비합리‧비논리‧감정)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은 ‘무의식’의 작동 아래 진행된다. 이는 우리네 일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한 남자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빵과 우유를 사 먹었다고 해보자. 이는 분명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이다.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자.’ 이는 그 남자가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 합리적·논리적·이성적인 마음, 즉 ‘의식’이다. 그런데 이는 정말 ‘의식’이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이 남자의 ‘무의식’에는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는 마음이 있다. 이는 결코 명료하게 인식할 수 없는 비합리‧비논리·감정적인 혼란한 마음이다. 이 남자의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사 먹자.’)은 이미 ‘무의식’(‘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의 영향 아래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다. 허기진 그 남자는 왜 음식점이 아니라 편의점에 들어갔을까? 그리고 편의점에서 왜 도시락이나 컵라면 같은 음식이 아닌 빵과 우유를 골랐을까? 이는 그 남자의 마음속에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는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말이나 휴일처럼 여유 있게 식사할 수 있는 날에도, 음식점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식사를 했던 이유였다. 또한 이것이 그가 편의점에서조차 가급적 빨리 먹을 수 있는 빵과 우유를 선택한 이유였다. 이처럼 우리는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이미 혼란하고 불투명한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의식’은 ‘의식’되지 않을 뿐, 큰 힘과 활동성을 지닌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 ‘무의식’의 특징을 하나 알 수 있다.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할 수 없는 것이지만 큰 힘과 활동성을 갖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우리는 아무리 힘이 강해져도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어떤 잠재적인 생각(무의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무의식’은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생각을 지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히 어떤 동태적인 성격을 지닌 생각들, 즉 그 힘의 강도나 활동성에도 불구하고 의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생각들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의 무의식에 관한 노트』 지그문트 프로이트
‘무의식’은 ‘의식’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 즉, ‘무의식’은 ‘의식’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의식’이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무의식’은 잠재해 있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마음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의식’은 어떤 것을 움직이게 하거나 변하게(“동태적”) 하는 성격을 지닌다. 즉, ‘무의식’은 강력한 힘(강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판단‧행동을 움직이게 하거나 변하게 할 활동성을 갖고 있다.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 이런 ‘무의식’을 가진 이를 생각해보자. 그의 ‘무의식’은 잠재해 있기에 스스로 ‘의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삶 전반을 지배할 만한 활동성을 지닌다. 그의 삶을 살펴보자. 그는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그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고, 효율적인 일 처리를 강조하며, 일별‧주별‧월별 계획표를 만든다. 이는 모두 ‘의식’적인 행동들이지만, 동시에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진 ‘무의식’의 지배 아래서 일어난 일들이다.
피해의식은 무의식이기에 강렬하다
피해의식이 무의식적이기에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가질 만큼 강렬하다. 피해의식의 ‘깊이’는 무엇인가? 한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난 균열이다. 이 균열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기에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피해의식이 건드려지면 극심한 감정적 동요(두려움‧분노‧열등감‧무기력‧억울함)를 겪게 된다. 이는 무의식의 양상과 같다. ‘무의식’ 역시 한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기에 스스로 발견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우발적 마주침에 의해 무의식이 발견되면 선명한 감정적 균열(분노‧적개심)이 발생하게 된다.
피해의식의 ‘넓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코 위에 얹어진 안경이다. 안경을 쓰고 있는 이는 늘 안경과 함께하기에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동시에 안경을 쓴 이는 삶 전반을 모두 그 안경을 통해 볼 수밖에 없다. 그가 삶에서 어떤 사고‧판단‧행동을 하던 그것은 전부 그 안경을 통해 본 삶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처럼 피해의식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넓게 지배한다. 이 역시 ‘무의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무의식’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의식’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 삶 전반에서 일어나는 ‘의식’적인 사고‧판단‧행동들은 ‘무의식’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무의식’이 ‘의식’되지 않은 채로 삶 전반을 지배하는 것처럼,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삶 전반이 피해의식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피해의식은 통제하기 어렵다. 그것은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은 ‘무의식’이 ‘의식’되지 않은 채로 강력한 힘과 활동성을 지닌 것처럼 작동한다. 이것이 피해의식 역시 좀처럼 명확히 의식되지 않지만 강력한 힘과 활동성을 지니고 있는 이유다. 그 힘과 활동성이 한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균열을 내고, 동시에 한 사람의 삶 전반을 넓게 지배한다.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이 이유 모를 두려움과 분노, 열등감을 통제하기 어려운 것도, 자신이 피해의식에 휩싸였는지도 모른 채 피해의식에 기반한 사고‧판단‧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