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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야를 좁히는 일이다.

100미터 미인의 비밀

 ‘지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어떤 대상을 파악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많은 대상, 예컨대 친구·부모·바다·노을·음악 등등을 ‘지각’하며 살죠. 베르그손은 이런 ‘지각’이 단지 외부 대상을 수용하는 작용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각’은 구심신경을 통해 외부 대상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원심신경을 통해 외부 대상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포함된 행위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지각’에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하나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거리입니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사실상 외부 사물들의 크기형태그리고 색깔까지도 내 몸이 그들로부터 멀어지느냐 가까워지느냐에 따라 변화한다냄새의 짙기나 소리의 강도도 거리에 따라 증가·감소하며무엇보다도 그 거리라는 것 자체가 결국은 주변 물체들이 이를테면 내 몸의 직접적 행동에 대하여 갖는 확실성의 정도를 나타낸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외부 사물들의 특성(크기·형태·색깔…)은 내 몸과 그 외부 대상의 거리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떤 대상의 “냄새의 짙기나 소리의 강도도 거리에 따라 증가·감소”하게 마련이니까요. 한 사람을 ‘지각’하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을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같은 ‘지각’을 하게 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죠.


 ‘100미터 미인’이라는 말이 있죠. 이는 멀리서 보았을 땐 참 괜찮은 사람 같아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별로이거나 심지어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하잖아요. 이런 ‘100미터 미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입니다. 이런 ‘지각’의 차이는 바로 거리 차이 때문에 발생합니다.      


Ron Mueck


거리에 따라 지각은 달라진다.


 거리에 따라 두 가지 ‘지각’이 있습니다. 먼 거리의 ‘지각’과 가까운 거리의 ‘지각’이 있죠. 동일한 사람을 ‘지각’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한 사람을 먼 거리에서 ‘지각’한다는 건, 그 사람을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지각’이죠. 반면 한 사람을 가까이서 ‘지각’한다는 건, 그 사람에 관한 정보를 수용하지만 동시에 자신 역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지각’하는 것이죠.      


 이 두 지각 사이에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겁니다. 화면에서만 보던 근사한 연예인을 실제로 보게 되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또 동경하던 대상을 실제로 만나 대화해보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 역시 종종 발생합니다. 이는 거리에 따른 지각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죠. 이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일일까요? 자연도 그렇지 않나요?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이는 식물이나 곤충들이 있죠.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징그럽게 짝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무지개를 본다고 하더라도 고개를 조금만 기울여 다른 각도로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색깔로 보이잖아요. 왜 그럴까요? 이는 거리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구심신경과 내보내는 원심신경의 작용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지각’은 외부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외부 대상에게 자신이 영향을 미치는 종합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각’에서 거리는 중요하죠. 거리에 따라 외부 대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명확도’가 차이가 나고, 동시에 그 외부 대상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도’가 차이가 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멀리서 보았을 때 좋은 사람인 이유는 거리가 멀어서 내게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내가 영향을 미치기도 어렵기 때문일 뿐입니다. 반대로 가까이서 보았을 때 실망하게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리가 가깝기에 상대가 내게 명확하게 보이고, 내가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베르그손의 말처럼, 거리라는 것은 결국 “내 몸의 직접 행동에 대하여 갖는 확실성의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잘 ‘지각’한다는 말은 거리가 더 가까워져서 외부 대상을 더 확실히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게 직접적(확실하게)으로 영향을 미칠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 거죠.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때,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시야를 넓혀서 보라’ 똑똑한 체하는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죠. 그들은 세계를 더 잘 보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삶의 진실을 왜곡하는 말도 없을 겁니다. 시야를 넓힌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거리를 둔다는 의미 아닌가요? 그렇게 거리를 둔 채 특정한 외부 대상을 보게 되면 정말 더 잘 보게 되는 것일까요?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봅시다.    

  

 나를 둘러싼 상들은 내 시야가 넓어지는 그만큼 더욱더 획일적인 배경 위에 그려지게 되고나에게 무차별적인 것으로 보인다시야가 좁아질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들은 더욱더 분명하게 배치된다즉 그것은 내 몸이 그것들을 만지고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더 용이하느냐에 따른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정말 근사한 말 아닌가요? 베르그손은 시야를 넓혀서 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내 시야가 넓어지는 그만큼 더욱더 획일적인 배경 위에 그려지게 되고 나에게 무차별적인 것”으로 보이게 마련이니까요. 이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상황과 비슷할 겁니다. 그때 우리는 획일적 배경을 보게 되고, 그것들은 모두 무의미하기에 나에게 무차별적인 것으로 보일 뿐이죠. 

     

 시야를 넓히면, 즉 거리를 두면 ‘나’를 울고 웃게 할 단독적인 배경은 사라지고, 오직 ‘나’이기에 만나게 될 차별적(유의미한) 존재는 사라지게 됩니다. 거리를 두면(시야를 넓히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아무런 의미도 볼 수 없게 되죠. 더 넓게 보기 위해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셈입니다. 여기서 삶의 진실 하나를 알게 되죠. ‘모든 것을 보려 할 때,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가까이 보아야 아름답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1> 나태주     


 어느 시인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죠. 세계(타자)를 잘 보려면 시야를 좁혀서 보아야 합니다. 충분히 가까이 가서 보아야 합니다. 베르그손의 말처럼, “시야가 좁아질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은 더욱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몸이 대상을 만지고 움직이는 것이 더 용이해질 만큼 거리를 좁혀 나갈 때, 그 ‘대상’을 더욱 잘 지각하게 됩니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지각’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한 번에 100, 1,000, 10,000명을 ‘지각’할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서야 합니다. 손깍지의 거리, 아니 그보다 더 가까이 다가서서 그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온기와 향기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서야 합니다. 포옹의 거리까지. 


 바로 그 거리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 사람을 더욱 분명하게 '지각'하게 될 겁니다. 그때 상대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지각’하게 될 겁니다. 시야를 좁히고 좁혀 한 사람을 가장 선명하게 ‘지각’할 수 있게 된 상태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는 걸 겁니다. ‘너’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그렇게 예쁘게 보이기 때문에 ‘너’를 오래 볼 수 있겠죠. 그때 ‘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지각’하게 될 겁니다. 


 어떤 대상을 더 잘 ‘지각’하고 싶다면, 시야를 넓히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서서 시야를 좁혀야 할 겁니다. 아름다운 ‘너’를 자세히 볼 수 있을 만큼, 사랑스러운 ‘너’를 오래 볼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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