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남지 않은 8가지 이야기
겉으로는 “개인 사정”이라고 적힌 사직서.
그 뒤에는 거부된 희망퇴직, 면담실의 흰 봉투, 줄 없는 사람의 몰락, 아픈 순간 버려진 인재, 그리고 성추행·스토킹·횡령·불륜 같은 드러나길 원치 않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저 곁에서 지켜봤을 뿐인데, 그 장면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아침, 사무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동시에 떠오른 새 알림.
[희망퇴직 안내]
숨죽인 채 메일을 열던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성과가 좋은 직원은 희망퇴직을 신청해도 거부됐다.
“아직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말했다.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는 것도 지옥이야.”
반대로 평가에서 밀린 사람들은 정중한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커리어 방향 협의 요청]
회의실로 불려가 흰 봉투를 받았고, 그 안에는 ‘퇴직 위로금 안내서’가 들어 있었다.
결국 회사의 선택은 단순했다.
잡고 싶은 사람은 붙잡고, 내보내고 싶은 사람은 면담실로 보냈다.
퇴직의 문은 하나였지만, 사람마다 들어가는 방식은 달랐다.
최 과장은 누구보다 성실했고, 실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3년 연속 승진 심사에서 탈락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늘 같았다.
“리더십 부족.”
하지만 동료들은 다 알았다.
그가 잘못된 파벌에 섰다는 것을.
마지막 출근 날, 그는 담담히 말했다.
회사에선 실력보다 줄이 더 중요해.”
그 말은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씁쓸하게 남았다.
이 차장은 한때 ‘미래 임원감’이라 불리던 인재였다.
성과 발표 자리마다 그의 이름이 불렸고, 누구도 그의 앞길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병이 찾아왔다.
회의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성과가 예전 같지 않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차장님, 몸이 힘들면 쉬는 게 낫지 않아요?”
겉으로는 배려 같았지만, 그 속엔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이 담겨 있었다.
하루아침에 그는 능력 있는 인재에서 무능력한 직원으로 낙인찍혔다.
결국 그는 건강을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더 쓰라렸던 건 몸이 아니라,
아픈 순간부터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부장이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음엔 뒷말이라 여겼지만, 피해자가 인사팀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건은 현실이 되었다.
인사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그는 자진 사표를 냈다.
공식 기록에는 “개인 사정.”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에 취직했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넘어갔다.
그러나 몇 년 뒤 들려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새 직장에서도 같은 이유로 결국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는 늘 “딸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고 말했고,
카톡 프로필은 언제나 가족 사진이었다.
사람들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딸이 있는 사람이 왜 저럴까…”
겉으로는 친절했던 한 선배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특정 후배에게 집착했다.
퇴근길에 불쑥 나타나 “같이 가자”며 따라붙고,
사소한 일에도 메시지를 수십 통씩 보냈다.
농담처럼 넘길 수 있는 수준을 지나, 곧 공포로 변했다.
후배는 결국 팀장에게 도움을 청했고, 일이 인사팀으로까지 올라갔다.
그는 인사위원회 직전 사표를 제출했다.
기록에는 또다시 “개인 사정.”
하지만 후배의 상처는 그가 떠나도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돈과 관련된 퇴사 사유는 더 은밀했고, 더 치명적이었다.
한 임원은 회사 자금을 빼돌리다 조용히 사라졌다.
겉으로는 명예퇴직이라 발표됐지만, 모두가 알았다.
돈과 함께 그의 이름도 조직에서 지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경리부 직원의 사건은 더 충격적이었다.
장부를 쥔 그는 회사의 숨겨진 비리를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임원들에게 말했다.
“제가 알고 있는 걸 밖으로 흘리면, 회사도 다칩니다.”
사실상 협상이었다.
회사는 은밀히 돈을 건네며 사건을 덮었다.
얼마 후 그는 사직했고, 기록은 또 “개인 사정.”
몇 달 뒤 사무실에선 믿기 힘든 소문이 돌았다.
그가 성형수술을 받고, 강남에 아파트를 샀다는 얘기였다.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가능하지 않겠어?”
마케팅 직원은 더 교묘했다.
외부 에이전시와 짜고 허위 비용을 청구해 통령(통행세처럼 빼돌린 돈)을 챙겼다.
겉으론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굴러갔지만, 썪어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 역시 인사위원회 직전 사표를 던졌다.
돈은 사람을 바꾸었지만, 돈이 남긴 흔적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유부남 팀장과 신입사원의 소문은 오래 돌았다.
사실을 폭로한 건 신입사원의 아버지였다.
어느 날 아침, 회사 정문 앞에 피켓이 세워졌다.
“내 딸을 농락한 유부남을 처벌하라!”
그 주 금요일, 팀장은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단 두 글자, 개인 사정.
몇 달 뒤 소문은 완성됐다.
그는 결국 이혼했고, 그 신입사원과 결혼했다.
사람들은 허탈하게 웃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네.”
퇴사 사유는 언제나 단순하게 기록된다.
개인 사정. 새로운 도전.
하지만 그 뒤에는,
희망퇴직과 면담실의 진실,
줄 없는 사람의 몰락,
아픈 순간 버려진 인재,
성추행으로 지워진 이름,
선배의 집착이 만든 스토킹,
돈으로 덮인 횡령과 비리,
폭로된 불륜까지.
책상 위 A4 사직서 한 장에는 결코 담기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더 씁쓸한다.
나는 그저 곁에서 지켜봤을 뿐인데,
그 모든 장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들은 여전히 카톡 프로필에 가족 사진을 걸어두고 있었다.
회사는 늘 퇴사의 이유를 “개인 사정”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그 뒤의 상처와 진실은 결국 사람들에게 더 오래 남았다.
회사는 잊어도,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는다.
#퇴사 #이직 #직장생활 #조직문화 #희망퇴직 #회사비리 #성추행사건 #스토킹사건 #횡령 #불륜 #브런치에세이 #직장인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