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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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손등이 가려웠다. 며칠 전부터 생긴 증상이었다. 점심시간을 빌려 피부과를 다녀오긴 했지만, 회사 근처의 늙은 의사는 직장인의 병을 몰랐다. 의사는 내게 최근에 샴푸를 바꾼 적이 있는지, 안 먹던 음식은 먹은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전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일 알레르기 검사를 해보자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한 후에 다시는 그 피부과에 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문제가 생긴 것은 김대리였다. 그러니까, 이과장이 받아온 프로젝트 건 때문에 며칠 동안 밤낮없이 일했던 날 중 하루였다. 집에도 제때 가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사무실 안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우리는 손으로 타자를 치면서 입으로는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프로젝트 발표를 이틀 남겨둔 날이었다. 책상 위에서 쪽잠을 자고 있던 김대리는 일어나자마자 달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달력을 내려놓았다. 그의 달력 23일에는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이 프로젝트는 며칠째더라.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갔다. 아니 오후였던가. 어쩌면 저녁일지도 모르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오늘도 배달원이 꺼낸 것은 청국장이었다. 요즘은 이런 것도 배달이 되는구나.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물었을 때, 배달의 민족이라고 말하던 그 광고처럼 우리는 그러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김대리는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이 그를 보고 있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냥 말을 해보지 그래요? 라고 말하자, 지금 얘기할 시간이 있어 보여요? 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계속되는 야근 덕분인지, 프로젝트는 조금씩 끝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은 일은 내일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이과장은 떡진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김대리도 마찬가지였다. <김대리, 일도 일찍 끝났는데 한잔하러 가지.>이과장은 머리를 만졌던 손 냄새를 맡으며 그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항상 가던 그곳 예약해두겠습니다.>그는 가방 챙기는 것을 멈춘 채 말했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는 길에 김대리의 달력이 보였다. 그가 빨간 동그라미를 쳐둔 곳에는 작은 글씨로 결혼기념일이라고 적혀있었다.
다음날 김대리는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 시간이 지나고 점심을 먹은 후에도 그는 출근하지 않았다. 나는 이과장에게 김대리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아아, 김대리. 이제 출근하지 않을 거야. 그는 덜 깎은 수염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는 그곳에 뿌리를 내렸거든. 어제 고려당 있지? 아 그 왜, 저번에 술 마신 곳 말이야. 그곳에서 술을 마시는데, 이 친구가 글쎄. 술을 따라주는 족족 한 번에 들이키는 게 아니겠나.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구나, 생각하면서 계속 술을 따라줬지. 소주도 따라주고, 맥주도 따라주고, 청하라는 술이 있거든. 이게 또, 회랑 먹으면 그렇게 기가 막힌단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한 시간을 마셨나? 갑자기 이 녀석이 울더라구.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는 둥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는 둥. 그래서 나는 아이고, 이 친구가 많이 취했구나. 하면서 그냥 또 술을 따라줬지 뭐.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니까, 이번엔 손등을 미친 듯이 긁는 거 아니겠나? 손등에서 피가 터져 나와도 멈추질 않는 거야. 그래서 내가 화장실 가서 손 좀 씻고 오라니까, 일어날 수가 없다더라고. 다리를 보니까 글쎄, 바닥에 뿌리를 내려 버린 거야. 그래, 마치 나무처럼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고, 내가 많이 취했구나.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계산을 하고 나와버렸지. 이제 그 친구는 이제 오지 못할 거야.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오늘부터 자네가 김대리가 되면 어떻겠나? 아, 그 성도 똑같고 말이야. 하는 일은 별거 없어, 예전 김대리가 하던 것처럼만 하면 돼. 승진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자고. 이과장은 웃으며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나는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 김대리,
<오늘 점심은 뭘 먹으면 좋겠나?>
또, 다시 손등이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