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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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허브를 키워본 적이 있었다. 여름방학 방학식 날, 담임선생님은 화분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선생님은 식물도 우리처럼 하나의 생물체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내 두 손보다 조금 큰 화분을 들고 조심스레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허브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은 기억하고 있다. 베란다에 놓아둔 허브는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허브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기는 집 안을 금세 채웠다. 나는 화분에 흙이 말라 있으면 물을 주었고, 그늘에 놓여 있다면 햇빛이 있는 장소로 허브를 옮겨 주었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는 자연스레 엄마나 할머니가 허브를 돌봐주었었다.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지나자 여느 아이들처럼 허브는 나에게 점점 잊혀 졌다. 단순히 싫증이 났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허브는 나에게 장난감만큼의 재미를 주지 못했고, 만화영화만큼의 쾌감을 주지 못했다. 허브는 그저 그 자리에 계속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커다란 존재로서 다가왔던 허브는 며칠 사이에 딱 자신의 크기만큼의 존재로서 나에게 남아 있었고, 허브에서 새싹으로 새싹에서 씨앗으로 점점 그 존재는 희미해져만 갔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자리에 놓여 있었던 허브도 빨랫감 앞에서는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고, 물을 주는 건 잊은 지 오래였다. 햇빛과 물이 사라진 허브는 점점 그림자처럼 어두운 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허브의 모습은 생명이 빛이 빠져나간 껍데기에 불과했다.
내가 허브의 존재를 기억해낸 것은 방학 숙제를 챙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내가 바라본 허브의 모습은 줄기와 가지들은 까맣게 변해있었고, 말라비틀어져 버린 모습이었다. 아마 그것이 내가 처음 본 시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를 불렀다.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나를 진정시킨 채 엄마는 허브를 집어 들고 쓰레기봉투 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봉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허브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허브의 눈과 마주친 것 같았다. 다 죽어가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허브는
‘살인자’
라고 말한 것 같았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허브를 제대로 돌봐준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반 아이들 서른여섯 명 중에 단 한 명뿐이었다. 그 허브는 이를테면 인간이란 숲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생존자인 셈이었다. 선생님은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다음부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 후에 우리들의 손에 과자를 하나씩 쥐여 주었다. 그 과자는 허브를 잘 키워온 아이들에게만 주는 선물이었지만, 모두 과자를 먹자 허브를 키워온 아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과자 하나가 허브의 목숨값이었던 셈이었다.
우리에겐 단지 그뿐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