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초보 엄마의 낭독(만0세~2세 영아)

“어떻게 읽어주지? 읽어주면 알아는 듣나?”

by 임쓸모

사실 나는 직업상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에 익숙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주로 만 4,5세반 담임을 맡았던 교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 한둘만 있어도 정신없는데 유치원 교사들은 2~30명 되는 아이들을 어떻게 집중시키고 말을 듣게 하는지 궁금해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자유선택활동이라고 해서 유아들이 스스로 선택한 놀이를 자유롭게 하는 방식의 소 그룹 교수법을 주로 활용한다. 하지만 대집단 활동이 아예없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2가지 노하우라고 할만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손유희>와 <그림책> 이었다.


거울 뉴런이 발달하는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교사들의 율동이나 손동작을 자연스레 따라 한다. 어느 정도 아이들의 이목이 모아졌을 때 그날의 일과나 중요 전달 사항을 아이들과 나누는 게 유치원교사들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아이들이 별말 하지 않아도 집중하는 시간이 또 있다. 바로 <그림책>읽는 시간이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운율감이 살아있는 그림책의 언어들은 아이들을 홀리듯 집중시킨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이야기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스토리 텔링의 힘을 느꼈다. 주말 연속극을 보기 위해 시간 맞춰 텔레비젼 앞에 모이던 어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야기의 힘은 나이를 초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교육 경력을 가진 나는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기가 태어나면 완벽한 육아를 할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막상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나는 떨고 있었다. 아기가 너무나 조그마했기에(뭐, 내 느낌상 그랬다는 이야기고 실제로 우리 아기는 3.98kg의 우량아로 당시 신생아실에서 제일 건장한 아기였다.뭐, 어쨌든!)

‘내가 이 아기를 실수로 죽이면 어떻하지?’하는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다. 아기는 사랑스러웠지만 나의 무지로 아기에게 해를 끼칠 것만 같아서 너무도 조심스러웠고 무서웠다. 그렇게 벌벌 떨며 똥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배꼽을 소독하고 날밤을 세우며 2시간마다 젖을 먹이는 마의 100일을 보냈다. 정말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고 그냥 아기를 죽일까봐 전전긍긍했던 시간이었다.

100일의 기적이라고 했던가? 정확히 딱 100일은 아니지만 그 즈음부터 아기는 좀 더 길게 3~4시간을 자 주었고 고개를 들고 뒤집기를 하고 나를 보고 옹알이를 하기 시작했다. 아기의 미소를 보자 힘이 났고 집 나갔던 정신도 조금씩 돌아왔다. 그 즈음 선물 받았던 내복들이 작아져서 새로운 치수의 내복을 사고 그러면서 귀여운 외출복도 주문했다. 꿈도 못 꿨던 아기와의 동네 산책도 이 즈음 시작되었다. 바퀴가 커다란 디럭스 유모차에 아기의 몸을 고정시킬 목받침과 행여 따가운 햇빛에 연약한 아기피부가 상할까 유기농 면으로 된 여름담요, 기저귀, 물티슈, 아기 먹일 물, 그 즈음 먹기 시작한 떡뻥튀기 등을 준비하여 첫 산책을 나갔다.

처음엔 유모차 안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아기는 어미와 떨어진 그 1m 남짓의 거리가 못마땅했던가 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기는 울기 시작했고 이미 아파트 동현관부터 나는 아기띠를 메고 엉거주춤 빈 유모차를 밀고 있었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다가 들어가기를 몇 회. (그렇게 비싼 유모차는 그저 짐을 싣는 짐수레가 되었다고 한다...ㅠ.ㅠ)

그래도 콧바람을 쐬고 싶어 나간 산책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있었다. 말끔한 옷차림에 중년의 부인은 아기가 귀엽다며 접근해왔다. 몇 개월인지 물어보고 “참 실하게 컸네~!”하는 칭찬의 말을 하던 그 중년 부인은 이제 아기를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해야할 때가 되었다고 나에게 선언했다!

“아직 아기 안은 모습이 엉성하네.”라는 초보 엄마의 심장을 콱 찌르는 말과 함께 그녀가 내민 팜플렛에는 아기전용 전집이 나와 있었다. 0세부터 24개월의 아기만을 위한 책 70여권이 세트이고 마침 새 시리즈가 나오기 전 마지막 프로모션으로 할인이 들어가 78만원에 모시겠다는 이야기까지.


유치원 교사 시절 이미 <어린이도서연구회(사)>의 회원가입을 했던 나는 전집의 폐해에 대해 게시판의 글이나 잡지 기사를 통해 알고 있음에도 친절한 중년 부인의 다정한 제안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가족 이외에 몇 달만에 나와 대화를 나눈 타인이었고 어른이었다. 거기다 그녀가 가져온 샘플북을 보여주며 노래를 부르자, 내 아기가 관심있게 바라보고 만지려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아기가 나를 닮아 책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라는 착각이 물밀 듯 몰려왔다.

그 날밤, 고민 끝에 남편과 상의하여 전집을 들여 놓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후 전집은 우리 집 거실을 차지했고 판매사원인 중년여인은 계약서의 싸인을 받아간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아기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아기는 판매사원과 함께 있을 때와 달리 책에 대한 관심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제일 쉬워보이는 책을 꺼내어서 보여줘 봤지만 책을 들고 모서리를 입에 가져갈 뿐. 책을 보지는 않았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아기에게 책은 읽는 것이 아닌 하나의 신기한 물체였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함께 준 책과 관련된 CD음악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기와 단 둘이 매번 클래식만 듣기 지루했으므로 BGM이라 생각하고 CD는 계속 틀어두었다. 시간이 흘러 6개의 CD를 닳도록 들은 나는 어쩌다 아기의 손이 닿은 책의 노래는 자동 재생이 되어 입에서 흘러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알았다. 유레카! 아기가 그 때 그 판매원에게 반응을 보인 이유는 “소리”였다는 것을.


CD에서 나온 노래에는 관심이 별 없던 아기가 내 입에서 나오는 노래에는 방싯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들려 주듯 책을 읽어주지 않고 책장을 넘기며 노래를 불러주자 아기는 놀랍게도 책 속의 그림을 제법 오래 쳐다보았고 관심을 보였다.

영아기의 아이들은 청각 자극에 대단히 예민하다. 인간은 다른 감각에 비해 청각의 발달이 일찍부터 발달해서 엄마의 뱃속에 있던 태아일 때부터 소리에 반응을 보인다. 이는 모국어 습득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에 영유아기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다양한 영역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구분할 수 있다고 알려져있다. 반대로 가장 느리게 정교하게 발달하는 것은 시각정보처리능력이다. 색을 구별하거나 크기, 대칭을 구별하는 능력은 성장하면서 발달해나간다. 신생아의 뇌는 시신경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태어나가기 때문에 생후 2~3개월에는 색을 구분하는 수준일 뿐인데 책 속의 그림 형태를 알아보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손과 입으로 뜯고 맛보면서 촉각과 미각을 통해 정보를 획득해 나간다.


유아교육 전공자로서 이론적으로만 알던 이야기가 내 눈앞에 내 아이 앞에서 벌어지니 초보 엄마인 나는 신기할 뿐이었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영아기의 아이들은 유치원 아이들과 또 다른 신세계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산 전집 말고도 선물로 받거나 개별구입한 아기책을 그야말로 아무 음이나 넣어서 들려주기(?)시작했다. 아기는 비싼 전집이든 선물받은 낱권의 책이든 가리지 않고 엄마가 노래를 들려주며 보여주면 관심을 보였다. 78만원이 공중으로 분해된 듯도 했지만 어쨌든 그 책들도 중간중간 보았고 함께 들어 있던 촉감책을 뜯고 맛보고 즐겼으며 아기와 함께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수업료 치룬 셈 치기로 했다.

더불어 아기책은 왜 이렇게 두꺼운 하드보드북인지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커가면서 반복의 늪에 빠졌기 때문인데 여러 번 보려면 책장이 튼튼해야 했고 무엇보다 던지고 밟고 물고 하는 갖은 고초를 이겨내야 하는 아기들의 첫 책이기 때문이었다. 유치원교사였을 때 봤다면 내용도 없고 반복되는 구조만을 가진 이 무거운 책의 효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 시기에 새로 배운 것은 "이론보다는 경험"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론을 알면 실제 교육활동에 적용할 때 스스로에게 신뢰감을 느끼고 자신있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도 있는 것이다. 나의 육아 경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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