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예술 분야 중에 나는 그림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음악은 직관적인 데 반해, 미술은 난해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내 귀에 좋으면 좋은 음악인 거고, 나쁘면 싫은 음악일 뿐이다. 그저 내가 느끼는 대로 좋아하고 싫어할 수 있다. 특별한 공부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에 나에게 그림은 난해하고 어렵다. 더구나 나같이 그림에 문외한은 그림과 친해진 기회가 잘 없다.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니라, 진짜 그림을 현실에서 보려면 미술관에 가야만 한다. 더구나 미술관에 어렵게 가더라도, 현대의 그림은 아름답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림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굳이 내가 미술관까지 가서, 화가들이 주관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내가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이런 노력조차 기울이는 것이 귀찮은 것도 있다. 아마 이런 관점은 나처럼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갖는 보편적인 정서일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그런 영화를 보면,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자기 생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관념을 굳이 이해하는데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싫었고, 굳이 이해할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생각을 투영한 영화를 보고 느끼고 알아야만, 깨어있는 사람인 것처럼 강요하는듯한 전반적인 느낌이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난 스스로 ‘난 이런 종류의 인간이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거장들이 만든 영화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거장이라는 감독들의 영화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영화에 녹아들어서인지, 아니면 독특한 시선 때문인지,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저절로 감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꿈(夢, Dreams :1990)’이라는 영화는 다르게 느껴졌다. 대학 시절, 미술 하던 친구가 어렵게 구한, 여러 번 복사를 떠서 화질이 뭉개진, VHS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본, 이 영화는 구린 화질에도 불구하고, 묘한 흡입력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사실상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그렇게 재미있게 본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업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는 산업이기에, 자본주의적인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비적이고 감각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상업영화의 거장들이 만든 명작인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그저 별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오락 영화를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녀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마는 둘이 함께 보는 처음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로 약속하긴 했는데, 어떤 영화를 볼지, 서로 약간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 어떤 영화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같이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좋았다. 영화가 재밌으면 더 좋겠지만, 어떤 영화를 보느냐보다는 같이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묘한 설렘을 주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어떤 영화를 볼지 정하겠다고 했고, 그래서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는 계획이었다. 영화는 ‘그녀답게’ 다큐와 비슷한 장르의 독립영화인지, 예술영화 비슷한 걸 보자고 했다.
영화를 보기로 한 곳은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라는 극장이었다. 이 극장은 이런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곳이었다. 이런 돈도 되지 않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틀어주고 있는 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수익을 보지 않는 극장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높아져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기다리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불길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의 전형적인 도입부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 내내 정말 재미없었다. 10대인 아이가 나름 철학적으로 고민하다가 만든 것 같은, 내 기준에서는 굉장히 철없고 구린 영화였다. 그리곤 이내, 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슬슬 걱정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 밖에서, “이 영화 재밌지 않아요?”라고 하면 어떡하지?’
‘난 거짓말은 할 수 없는데 어떡하지?’
‘그녀에게 실망하게 되면 어떡하지?’
사실 난 그녀가 참 마음에 들었고, 계속 만남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이 영화를 재밌다고 한다면,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마도 한두 번은 더 만나보겠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처럼, 아니, 이번 생에는 없을 것 같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끝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영화가 끝이 났다. 자막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채비하고 상영관을 빠져나갔고, 우리는 거의 마지막에 나왔다.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나왔다. 그렇게 로비로 향하는 복도에서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이런 영화인지 몰랐어요. 재미도 없고, 메시지도 없네요. 힘들었죠?”
“아~!, 다행이네요. 사실 저는 당신이 이 영화를 재밌다고 할까 봐 걱정했어요.”
“네?”
“그런 사람 있잖아요. 괜히 이상한 영화를 보고 이상하게 해석해서 이상하게 의미를 두는,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요.”
“훗훗!”
그녀는 웃으며,
“다행이네요.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정말 영화보면서 고민 많이 했어요. 다행이에요.”
그렇게 서로 웃으며, 우리 사이에 좀 더 깊은 친밀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결혼 후에, 우리는 웬만하면 영화를 같이 보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갤러리를 다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다. 너무도 다른, 영화나 기타 장르에 대한 취향의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장르는 내가 싫어하는 장르이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그녀가 싫어한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그녀와 나의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취미나 취향을 강요하지 않고, 이해를 구하지도 않는다. 서로에게 존재할 뿐이고, 서로를 종속시키려고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