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당시 나를 또 설레게 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시청하는 일이었다. 그 드라마는 많은 사람을, 특히 중년 나이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시나리오, 연출력, 배우들의 연기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를 그렸지만, 따뜻함이 가득했던 드라마였다.
전반적으로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았는데, 나는 특히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도청하는 장면들에 더 몰입감을 가졌다. 조용한 오디오와 목소리만으로도 더 강렬함을 느꼈었던 것 같다.
드라마를 시청하고 난 다음 날 아침,
아마 오전 7시쯤으로 기억하는데, 문득 그가 생각났다.
지난밤 강렬하게 몰입되었던 드라마에 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이른 아침이라 전화를 하진 못했다.
나는 그냥 문자를 보냈다.
"굿모닝! 좋은 아침이네요."
그리고 문자와 함께 음악 파일을 보냈다.
‘나의 아저씨 OST. 어른’
"이 음악 어떨지 모르겠네요. 어제 본 드라마 OST입니다."
음악 파일을 보내고 난 후, 잠시 걱정이 되긴 했다.
이른 아침에, 그것도 그가 좋아할 유형의 음악인지도 알지 못한 채 일방적인 취향의 음악을 보냈기 때문이다. 음악 파일을 보낸다는 것은 매우 감성적인 메시지의 표현이다. 어쩌면 그가 꽤 거북해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그의 답 문자가 올 때까지 안절부절했던 기억이 난다.
역시, 그리 오래지 않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음악, 좋네요.”
“네, 음악 괜찮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이게 무슨 드라마 OST인 모양입니다.”
“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인데요. 제가 요즘 본방 사수하는 드라마에요. 일찍 일어나시나 봐요.”
“아, 저는 더 일찍 일어납니다. 운동 갔다 와서 이제 아침 먹으려고 해요.”
“네, 아침이요? 직접 요리하세요?”
“하하. 요리랄 게 있습니까? 아메리칸 스타일이죠. 계란프라이에 베이컨 굽고, 샐러드 조금 해서 그렇게 먹습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저도 산책 좀 다녀와야겠어요”
“네 그러세요. 이따 연락합시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사실 요즘엔 양식으로 먹는 걸 아메리칸 스타일이라 표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 있다면 우리 부모님 나이대 분들이나 그렇게 말씀하실텐데.... 여튼 한식이 주류였던 시대, 그러니까 2, 30년 전에 많이 사용했던 말이라서 좀 우습기도 했지만 묘한 신선함도 함께 느껴졌다.
가볍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부모님께서 아직 당신들의 방을 나와 계시기 전에, 조용히 거실을 지나쳐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다. 챙겨 온 아이팟을 귀에 꽂고, 그 남자에게 보낸 음악을 들으며 걷기 시작했다. 어제 본 장면을 떠올리며, 시청했을 때 느낀 그 감성과 감흥을 다시 느끼며 걸었다. 완연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아침 공기는 매우 부드럽고 온화했다.
“띠리링~!”
문자가 왔다.
아니 사진이 하나 전송돼 왔다.
그 남자가 ‘아메리칸 스타일’의 조식을 찍어 보낸 것이다.
‘푸웃..!!’
흰 접시에, 잼이 발라진 구운 식빵 한 조각, 계란프라이, 베이컨 두 장, 채 썬 양배추와 피클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오렌지 주스로 생각되는 음료가 함께 있었다.
매일 이렇게 아침식사를 한다고 했다.
아주 간소한 차림이지만, 사진으로 보이는 조식은 꽤 깔끔하고, 정갈한 차림의 느낌이 들었다.
‘양배추를 어떻게 저렇게 얇게 썰었을까?’
‘계란프라이도 잘했네.’
‘오렌지 주스까지…. 구색도 잘 맞췄네.’
나는 걷다 말고,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와~너무 깔끔한 아침 식사네요. 맛있게 드세요.”
이 남자를 만나고 나서 ‘아침’의 루틴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신을 좀 차린 후, 그에게 그날 선곡한 음악 파일을 보냈다.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루시드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레이첼 야마가타의 ‘Be Be Your Love’,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 나얼의 ‘한여름 밤의 꿈’ 등등.
그러면 그가 답장을 보냈다.
“네, 음악 좋네요.”
그러면서 날마다 조금은 달랐던, 그 시각의 아침을 문자로 서로 알리기 시작했다.
“저는 이제 설거지 해요”
“아, 저는 이제 밥 먹을 건데요. ”
“비가 오네요. 저는 비 오는 날 좋아하는데요.”
“저도 좋아하죠.”
“오늘은 뭐 하세요?”
“아 오늘은 머 그냥 집에 있을 거 같은데요.”
“네 저는 지방에 강의 가는 날이에요.”
“네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우리의 특별한 아침 인사는 매일 계속되었다.
그리고 언제 멈췄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특별하지 않아도 되는 때, 아마도 그때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