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관한 글을 쓰기로는 했지만, 처음 만나서 연애를 시작한 때가 벌써 4~5년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감정만 나열하는 글 보다는, 오십이 다 되어서도 ‘연애’와 ‘데이트’했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써 보자는 것이 기획 의도인데, 4~5년 전의 일들이 모두 기억이 나진 않을 것이었다. 지난날의 이야기를 다 기억해서 글을 쓸 수 있을지, 심각하게 논의하던 차에, 남편은 스마트폰을 꺼내, 이것저것을 살피더니, 갑자기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리, 그날 인사동 갔었어. 00에서 밥 먹었고.”
“이날은 영화 보러 갔었네. 무슨 영화를 봤는지 제목은 난 몰라.”
“아, 춘천에 갔었잖아. 기억나? 닭갈비 먹고, 그날 카페에서 우리 얘기 많이 했어.
아마 두 시간 정도 얘기했을걸? ”
남편은 스마트폰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새롭게 떠오르는 앱을 잘 이용한다기보다, 기본적으로 셋팅 되어 있는 서비스를 잘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옆에서 그의 스마트폰 이용을 보면서 히죽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달력에 모든 일정을 적어 놓았다. 누구와 어딜 갔는지, 시간대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식사했던 식당, 그리고 카페, 또 함께 구경 갔던 곳이, 카카오맵에 잘 표시되어 있었다. 식당은 '초록 별'로 카페는 ‘보라 네모’로, 함께 구경 갔던 공간이나 지역은 ‘노란 별' 표시로.
그날은 춘천엘 가는 날이었다. 벌써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기로 했었다. 수요일에 가까운 근교나 지방엘 다녀오고, 토요일엔 도심 내 여기저기를 가보기로 했었는데, 가까운 지방을 가는 일은 강화도 이후 두 번째였다. 한가한 평일 오전에 운전하는 그의 옆에 앉아, 국도를 달려가는데, 이곳을 무수히 다녀갔지만, 북한강과 강 너머 산기슭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이 어느 때보다도 그림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참 대학 시절 여기 많이 다녔어요. 친구들하고 추억이 참 많아요.”
“네, 저도 여기 MT 왔던 때가 기억나네요.”
대성리를 지나던 참이었다. 80년대 후반, 대학 MT를 많이 가던 시절이었다.
대성리, 가평, 강촌... 서로가 당시 MT에 관한 추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물었다.
“00 씨는 술을 잘 드세요?”
“네, 저는 좋아했어요. 지금은 나이 들어 많이는 못 마시지만, 대학 때 참 술 많이 먹었죠. 그때 정말 무식할 정도로 먹었어요. 대학 때 공강이 있잖아요. 강의 사이에 비는 시간에 학교 앞 주점에 가서 술 마시고, 취한 상태로 수업 들어가고 그랬죠.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ㅋㅋ”
“저는 술을 잘 못 마시거든요. 술 마시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친구들이 술을 왜 그렇게 마시는지 이해도 잘 안되었고요. 술이 과해서 꼭 안 좋은 일도 생기는데 말이에요.”
대학 때 술을 잘 못 마시는 친구들이 간혹 있었다. 그런데 잘 못 마셔도 그 분위기를 함께 하거나, 자리에 끝까지 함께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술을 못 마신다고 그 자리엘 가지 않고, 친구들과 별로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못 마셔도 함께 자리를 하고, 끝까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람이었을까?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불쑥해 놓고, 약간 머쓱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가 춘천 맛집을 좀 찾아봤는데요, 닭갈비가 맛있는 집이 있더라고요. 어떠세요?”
“네, 좋아요.”
골목에 있는 식당이라서, 주차장을 일부러 찾아, 주차하고 식당 앞에 도착했다.
점심때가 좀 지났는데도, 식당 앞에 줄이 있었다.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커플이, 맛집 식당 앞에서 기다리는 대열에 줄을 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꽤 어색한 시간이기도 하다.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온 사람들은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각자 스마트폰을 보기도 했지만 그게 부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그와 나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어정쩡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춘천에서 닭갈비 드셔보셨어요?”
“네, 대학 때 친구들이랑 여행 와서 처음 먹어봤죠. 머 최근에도 출장 왔을때도 먹었고..”
“닭갈비가 두 종류잖아요. 철판 위에 볶아 먹는 거, 숯불 위에 구워 먹는 거요. 어떤 걸 더 좋아하세요?”
“아, 닭갈비를 많이 좋아하진 않았는데, 글쎄요..”
“네, 여기는 숯불로 구워 먹는 닭갈비에요”
난 그제야 알았다. 닭갈비를 먹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는 걸. 그리고 난 숯불로 구워 먹는 닭갈비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숯불로 구워 먹은 닭갈비, 간장 맛, 소금구이 맛.. 조그만 식당에, 양은으로 되어 있는 둥근 테이블. 신발을 벗고 그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같은 숯불구이지만 두 가지의 다른 맛, 모두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남 초기의 어색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춘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요즘 유명하다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 산토리니엘 갔다. 평일이지만 유명세에 맞게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좋아서 야외 테이블에 자릴 잡았다.
“이 시간이 꿈 같네요.”
“네? 꿈이요?”
“네, 불과 얼마 전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나를 만나서 좋다는 건지, 아님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평범한 시간을 본인이 갖게 돼서 좋다는 건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기분 좋은 얘기였다. 약간 회한에 젖은 듯한 그를 보다, 마침내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내 봤다.
“왜 산에 올라가셨어요? 스님이 되고 싶으셨나요?”
잠시 말이 없었다.
“많이 궁금하시죠? ”
그는 그날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릴 때 유복하게 자랐는데, 몸이 많이 허약했고, 마음도 함께 허약했다고 했다.
사춘기 때 절정에 이르렀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저는 사는 게 하나도 재밌지 않았어요. 왜 그런지 늘 슬프고, 하루하루가 지루하다는 생각뿐 이었죠.”
서울보다 지방에서 올라 온 대학 친구들과 잘 지내게 되어서, 그럭저럭 대학시절은 잘 보냈지만, 회사엘 다니면서도 늘 사회생활은 버거웠었다고 했다. 좋은 직장엘 들어가고, 승진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는 일들이 그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삶의 동기가 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하고, 또 추구하는 그런 욕망들이 그에겐 없었다고 했다.
어느 날, 친구를 통해 알게 되어, 지리산에 있는 절을 찾게 되었는데, 우연히 경험한 절에서의 시간이 그를 계속 그 곳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에 직장 일을 마치고 지리산엘 내려갔고, 월요일 새벽에 서울에 올라와 바로 그날 아침 직장엘 출근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었다. 저녁에 일을 마치자마자 6시간 이상 차를 운전하고, 2시간 가까이 야간에 산을 올라가 겨우 절엘 다다랐다. 그나마 절에서도 그냥 쉬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절의 수행 시간에 맞게 온전히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몸은 엄청 고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은 행복했고, 숨을 제대로 쉬며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 행복했어요. 몸은 미치도록 힘들었는데, 진짜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았어요. 스님인 스승님도 너무 좋은 분이었고. 그날만 기다렸어요. 절에 내려가는 그날만.”
마음이 아팠다. 그의 어린 시절,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재미없고 무료한 인생을 느끼게 했을까?
“왜,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했나요?”
“몸이 약했어요. 몸이 약하고 기운이 없으면, 마음도 힘들어져요. 아마 제가 절에 가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 제가 없었을지도 모르죠.”
“아, 네. 선택을 잘 하셨네요. 산엘 들어가는 일이 참 어려운 선택이었을텐데...”
더 이야기를 끌어가진 못했다.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거기서 멈추었다.
3년을 그렇게 다니다가, 결국 그는 수행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을 등지고, 세상의 일들과 친구들을 버리고, 그는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어려운 삶을 선택했다. 만물의 법칙과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수행의 삶을 그는 매우 원초적인 개인적 동기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