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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Oct 25. 2024

Specially, Good Morning! - 男

남편의 章

음악은 젊음이다. 젊은 시절, 음악은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을 표현해 주는 상징이었다. 음악 자체가 주는 감성에, 스스로 과잉된 감정을 더하면, 젊음이 된다. 음악을 통해 울었고, 웃었고, 즐거웠고, 괴로웠다. 나의 모든 희로애락이 음악에 녹아있는 것 같았고, 음악이 나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오는 음악이 있다. 실패한 첫사랑의 아련함과 안타까움. 그 안에서 무기력했던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 겹치듯 멀어져 가는 느낌의 음악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음악이 한 곡쯤은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되새김질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스치는 냄새에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준 찌개가 생각나기도 하고, 흘러드는 노래에 가슴 아팠던 사랑의 향기를 맡기도 하고, 첫사랑과 비슷한 느낌의 사람이 지나가면, 선뜩한 가슴의 아림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불같이 일어나던 감성보다는 희미해진 회한이 많아진다는 것은, 윤기 없이 듬성듬성 털빠진 늙은 길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음악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스님이었던 시절 살았던 절은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있어서 전기나 전화가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서 도시에선 당연한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은 애당초 있을 수가 없었다. 여름엔 냉장고가 없어서 개울 옆에 웅덩이를 만들어 식료품을 보관하고 겨울엔 오히려 얼지 않도록 실내에 보관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등도 없었다. 밤에는 촛불로 방을 밝히고 밖에 있는 화장실을 갈 때는 손전등을 들고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자연 그대로인 채 살아야 했던 그 시절엔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전자제품인 오디오가 있어야 하고, 당연한 얘기지만, 오디오는 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음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삶은 음악을 들을 정도로 여유 있는 삶이 아니었다. 육체는 한계까지 밀어붙일 정도로 수행했고, 정신은 언제나 깨어있으려고 노력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어도 음악에까지 관심을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혹 개울에서 설거지를 끝낸 후이거나, 멱을 감고 난 후, 잠시 짬이 생기면 하늘을 보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 혹은 개울물 소리를 들을 때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한가함이 찾아왔다. 반면, 어쩌다 읍내에 내려가거나, 도시를 들를 때면, 도시의 소음이 힘겹게 느껴지곤 했다.     

산에서 내려온 후에도 간간이 어렸을 때 듣던 음악을 들을 뿐이었고, 새로운 음악은 거의 듣질 않았다. 예전의 음악은 그래도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어 들을 만했지만, 새로운 음악은 그닥 좋아지질 않았다. 산에서 수행을 하면서 살다 보니, 감각과 감성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고, 음악을 들어도, 이렇다 할 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의 동요는 거의 없었고, 이런 이유로 음악을 듣는 것은 소음에 가까웠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률에 내 감정의 파장이 동조해야 하고, 가사에 공감하는 마음의 물결이 일어야 하는데, 새로운 음악에 내 감정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감성을 일으키기엔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 나이를 먹으면 새로운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먹을 만큼 먹은 나이와 산에서의 생활, 두 가지가 새로운 음악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뜬금없이 음악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굿모닝!’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한 번 들어봐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아침에 듣다가 나에게 공유해 준 것이었다. 공유된 음악을 켜서 음악을 들어봤다. 솔직히 음악은 그냥 그랬다. 별 감흥이 없었다. 유행하는 드라마 OST라고 하는데, 음악 자체는 좋은 듯했지만, 내 마음을 울리진 않았다. 어색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난감했다. 그녀는 나름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며 나와 감정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약간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음악을 보내주는 것은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녀 같은 감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런 감성을 같이 느끼고 싶어 하는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음악 그 자체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아침 음악을 보내주는 것은 특별한 방식의 아침 인사가 되었다. 음악에 상관없이 아침의 일과가 되었고, 은근히 기다려졌다. 어쩌다 음악을 보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녀가 아침마다 보내주는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가끔 예전에 알던 음악을 보내오면 좀 더 반가웠지만,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음악을 보내왔다. 음악 자체에 대한 느낌보다는, 매일 아침 그녀가 무슨 느낌으로 음악을 보내올지 기다려졌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은 늘 즐거웠다.     


이렇게 그녀에 대한 감정도 젊은 시절의 불타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은근히 따스하게 다가오는 온돌 같은 느낌의 진하고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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