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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Nov 01. 2024

서로의 ‘두 시간’ - 男

남편의 章

어린 시절에 새로운 이성을 만난다는 건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한 미래에 대한 모험이었다. 젊은 날의 사랑은 날뛰는 에너지와 무분별한 색정으로 이성을 찾아 헤매게 되지만, 나이를 먹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한다는 건, 조금은 지치고 현실적인 상태에서, 늙어가는 현실을 이해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어른의 사랑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이만 먹은 아이’인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자신이 젊다고 생각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그래서 늙어감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이 먹은 아이’는 마음뿐만 아니라 겉모습도 추하게 늙어간다.     




지난번 영화데이트 이후,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아직 친밀함이 커지진 않았다. 그녀에게 주중엔 야외로 나가고, 주말엔 시내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빨리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춘천에 가기로 했다.     

 

주말의 시내 데이트는 그녀가 일정을 짜서 오면, 그대로 그녀에게 맡겨서 데이트했다. 반면, 주중 시외 데이트의 일정은 내 몫이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잘 짜거나 잘 지키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략 갈 곳을 복수로 정한 뒤, 되는대로 다니는 걸 선호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맛집과 가볼 만한 장소 등을 찾을 수 있었고, 점심으로 춘천 시내에 있는 숯불닭불고기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 계획만 세워두고 나머지는 되는대로 하려고 했다.    

  

그녀가 팔당역으로 오기로 했다. 남가좌동에 살았던 그녀가 경의중앙선을 타고 팔당역까지 오면 거기에서 만나 춘천에 가기로 한 것이다. 팔당역에서 만난 그녀는 약간 상기된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오래 걸리죠?”

“네?”

“집에서 여기까지요.”

“한 시간 좀 넘게 걸리네요.”

“꽤 걸리네요. 어서 가죠.”  

   

그렇게 우리는 차를 타고 춘천을 향했다. 춘천 가는 길여서 그런지 우리는 주로 대학 시절의 얘기를 했다. 비록 삶의 형태는 차이가 있었지만, 시대의 추억은 비슷했다. 같은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경험해서인지 비슷한 시대 정서가 있었다. 춘천은 우리 시절의 대표적인 정서의 상징이었다.     


이야기는 흘러 옛날에 입던 옷이 주제였다.     

 

“전 ‘이랜드’ 옷을 좋아했어요.”

“전 이랜드 브랜드 중에 ‘헌트’를 좋아했어요.”

“흐흐, 저는 ‘브렌따노’도 좋아했어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브랜드인데, 지금으로 치면 작은 규모의 ‘유니클로’나 ‘에잇세컨즈’ 같은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편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하다 보니, 춘천 시내에 이르렀다. 주차를 하고 숯불닭불고기집에 도착해보니, 앞에 세네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자연스레 기다리기로 했다.   

   

연애 초기엔 상대방과의 거리에 민감해진다. 둘의 간격이 멀면 아쉬웠고, 가까우면 어색했다. 더구나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우린 아직 말을 놓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어색하게 주변을 의식하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세상이 어색한 건지 연애가 어색한 건지 우리는 더딘 연애를 하고 있었다. 다른 중년의 커플들은 어떤 연애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속도는 느렸지만, 풋풋했다.    

  

식당은 춘천 시내에 있는 오래된 곳이었는데, 음식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어색함 속에서도 맛있음이 느껴졌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러 구봉산에 있는 산토리니라는 카페를 갔다. 이탈리아 산토리니의 느낌을 살린 카페였는데, 넓은 정원 끝에는 산토리니 스타일의 조형물이 있었고, 그곳에서 보면 춘천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경치를 가진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두 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사람은 이상하게도 내가 출가해서 스님이 된 이유보다 왜 산에서 내려왔는지 더 궁금해한다. 하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가 출가한 이유를 물어왔다.  

    

“왜 스님이 되셨어요?”     

다섯 번의 만남 만에 물어본 질문이었다. 난 이런 마음의 속도가 좋았다. 그녀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고, 배려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동안 지켜본 그녀는 마음을 천천히 움직이지만 견고했고, 가볍거나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난 마음이 가벼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 궁금하셨죠?”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부모님이 맘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애지중지하셨는데, 그렇게 부모님의 테두리 안에서 살게 됐고, 마음이 연약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런 삶을 사는 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삶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늘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엔 슬픔과 우울함이 있었죠. 두려웠어요. 그런 나 자신도 두렵고, 세상도 두려웠어요.”

“그러다 스승님과 인연이 닿아서, 여러 사연 끝에, 주말마다 스승님이 계신 지리산에 다녔어요.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어요. 나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게 좋았어요. 그러다 출가를 결심하게 됐고, 산으로 들어갔죠.”     

 

이런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름 공감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그녀는 솔직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몇 마디의 말만 듣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과장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딱 적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살아온 삶에 관해서 얘기했다.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대학 시절, 직장 시절 등등. 우리는 그렇게 두 시간가량 우리는 서로를 보여줬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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