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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Dec 03. 2024

2025 신예작가 / 박숲

단편소설 /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9

   9.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거실에서 기역자로 꺾인 곳을 돌자 복도가 길게 이어졌고 두 개의 방이 나타났다. 사내는 문이 열려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커다란 공간이 펼쳐졌다. 방안에는 대형 유리 상자처럼 커다란 아크릴 새장 두 개가 진열되어 있고 새장 중간에 기다란 탁자가 가로놓여 있었다. 새장 하나는 비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 시몬과 같은 종류의 앵무새가 횟대 위에 조각상처럼 앉아 있었다. 사내는 새장 문을 열어 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호는 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한쪽 벽면에는 세 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각도에 따라 설치돼 있었다. 사내와 선호의 엉거주춤한 모습이 컴퓨터 화면에 잡혔다. 선호는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 지금은 방송 중이 아니니 신경 쓸 거 없어요. 


  사내의 말에도 선호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 난 원래 새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새는 아내 때문에 키웠죠. 


  선호는 사내의 입장이 자신과 비슷한 것에 내심 놀랐다. 사내는 아내가 새를 병적으로 좋아해서 자주 다퉜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점점 새처럼 말했고, 새들은 오히려 인간의 언어를 썼다고 했다. 


  - 이게 말이 됩니까? 


  사내가 구구절절 쏟아낸 말을 정리하자면, ‘아내는 새가 되었다’였다. 지영 역시 사람의 언어와 조류의 언어를 섞어가며 새들과 대화를 나눴다. 문득 새는 날아갈 수도 머물 수도 있다던 지영의 말을 떠올리며 선호는 말했다.


  - 선생님 아내는 새의 언어로 신호를 보냈을 겁니다. 선생님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을 거고요. 


  그렇게 말하고 나자 구름 뒤로 맑게 드러난 하늘처럼, 선호는 지영의 의미심장했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 인생이란 게 참 웃겨요, 그쵸? 새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면 모든 게 제자리를 찾겠지 했는데 말이죠…… 아참, 새를 파는 이유가 뭐요?

  - 네? 아 그, 그게……


  갑작스런 질문에 선호가 말을 더듬자 사내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대형 아크릴 새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곳에 시몬을 넣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호는 그의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


  - 계산부터 하는 게 순서죠. 


  사내는 아크릴 새장 문을 열고 회색앵무에게 말했다. 


  - 여보 어때, 당신 맘에 쏙 들지? 


  선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회색앵무는 박제된 새처럼 움직이지 않았지만 두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사내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스르륵스르륵, 사내의 휠체어가 선호 쪽으로 다가왔다. 시몬은 불안한 듯 부리를 세워 꽥꽥 소리를 지르며 화가 날 때 쓰는 단어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 사이 사내의 휠체어는 선호를 지나쳐 탁자 옆으로 갔다.


  - 이쪽으로 와요. 계산합시다. 


  선호는 걸음을 옮겨 사내 쪽으로 갔다. 그 사이 시몬은 다시 멍청이! 낙오자! 병신새끼! 소리를 질러댔다. 이상한 일이지만 시몬의 욕설을 듣자 선호는 오히려 안정감이 느껴졌다. 지영이 바로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내는 시몬에게 말버릇이 최악이라며 강력한 정신훈련이 필요한 녀석이라고 말한 뒤 단정적으로 덧붙였다. 


  - 낙오자란 스스로 인정해야만 가능한 겁니다. 남들이 아무리 낙오자라고 비난해도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아닌 거란 말이죠. 상대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건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니까요.


  선호는 사내의 말에 묘하게 공감되었지만 그런 자신이 못마땅하게 여겨져 사내의 말에 곧바로 반박했다. 


  -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낙오자의 가장 큰 특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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