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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Dec 03. 2024

2025 신예작가 / 박숲

단편소설 /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10

  10.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선호의 반박에 사내는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좀 더 얘기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선호는 사내와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 단호하게 말했다. 


  - 지금 계산하지 않으면 거래는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사내는 미간을 찡그리며 실실 웃었다. 


  - 오늘은 특별한 방송을 할 거요. 도네(도네이션 : 기부, 후원)를 꾸준히 쏴준 팬들을 위한 스페셜 서비스 방송 말요. 버릇이 고약하게 든 저놈이 모델로 제격이겠어.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훈련이 안 먹히는 놈들도 간혹 있긴 한데, 저놈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군. 


  사내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네? 시몬을 어떻게 한다고요? 


  선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거래가 끝나면 내가 주인 아닌가? 난 성격을 개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니까! 


  그 순간, 선호는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성격을 개조시킬 목적으로 새를 입양합니까? 쟤들도 제각각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모르세요? 당신은 비극을 놀이처럼 즐기나 본데,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죠. 


  선호는 자신이 지영처럼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햇살이 원룸의 창문 너머로 환하게 떠오르면 지영의 앵무들은 동시에 인간의 언어와 새의 언어를 섞어 수다를 떨었다. 그때마다 선호는 귀를 틀어막고 고함을 질렀다. 그럴수록 앵무들은 더욱 큰소리로 유쾌하게 떠들어대며 혼을 쏙 빼놓았다. 선호는 앵무들의 부리를 틀어막아 숨통을 끊어놓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지영이 아니었다면 작은 앵무 몇 마리를 수건으로 휘감아 죽일 뻔한 적도 있었다. 


  - 당신이 뭔데 시몬의 성격을 개조한다는 겁니까? 


  선호는 사내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마침 시몬이 선호의 목소리로, 낙오자! 하며 꽥 소리를 질렀다. 사내는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 낙오자? 넌 나랑 비슷한 족속이잖아 병신아! 


  선호는 사내의 비난에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애써 모른 척했던 수치스러운 감정이 낱낱이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재빨리 이동장의 손잡이를 움켜쥔 채 선호가 말했다. 


  - 당신은 비정상이야. 미쳤다고! 난 당신과 달라! 

  - 비정상? 내가 왜 비정상이야? 왜, 비용이 맘에 안 드나? 그럼 세 배로 쳐 주지. 그것도 부족한가?


  사내는 두툼한 입술을 벌려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선호는 이동장을 손에 들고 거래는 없던 걸로 하자고 했다. 사내가 거래를 원했던 건 자신의 결핍과 분노를 잠재울 조롱거리가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 왜 이러고 사세요! 한심한 인간처럼. 

  - 한심하다고? 그건 바로 너 같은 루저 새끼를 두고 하는 말이지! 두 배로 쳐준 금액이 새 목숨값이란 걸 너도 알고 있었잖아. 이제 와서 그걸 몰랐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건가?


  선호의 비웃음에 사내는 흥분한 어조로 소리쳤다. 사내의 비난은 뾰족한 압정처럼 선호의 온몸으로 날아와 박혔다. 


 - 나는 새의 생명을 팔고 목숨값을 받으러 온 게 아냐. 내가 당신처럼 새를 재물 삼아 대리만족이나 하는 찌질한 인간처럼 보여?


  선호는 이미 제어할 수 없는 감정 상태에 이르러 사내와 꼿꼿하게 맞섰다. 사내가 주먹으로 이동장을 내리쳐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순식간이었다. 시몬이 이동장 밖으로 빠져나와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선호는 시몬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잘됐군, 오늘 너희 둘 다 정신을 뜯어 고쳐주지! 


  언제 꺼낸 것인지 사내의 손에는 M16 비비탄총이 들려 있었다. 사내는 시몬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새장을 빠져나온 시몬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며 미친 듯 날개를 퍼덕거렸다. 

  타앙! 

  총소리가 공간을 뒤흔들었다. 선호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엎드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 와중에도 시몬의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선호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사내의 휠체어를 세게 밀치고 시몬의 뒤를 쫓았다. 사내가 괴성을 지르며 총을 쏘아댔다. 총성과 함께 비비탄 총알이 곳곳에서 우박처럼 튀어 올랐다.


  선호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사내의 호위무사처럼 보이던 대형 앵무가 퍽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붉고 푸른 깃털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 당신 미쳤어? 새를 죽이다니, 당장 멈춰! 


  선호가 고함을 질렀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내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곧이어 사내의 총구가 시몬을 향했다. 시몬은 놀라서 꽥꽥 괴성을 질렀다. 선호는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곧이어 총성과 함께 비비탄 환이 시몬을 향해 날아갔다. 날개를 맞은 건지 시몬이 중심을 잃고 허공을 맴돌았다. 선호의 가슴과 어깨 등 곳곳에도 총알이 쉴새 없이 날아왔다. 선호는 총알을 맞으며 탁자를 건너뛰어 사내의 총을 뺏고 휠체어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바닥으로 고꾸라진 사내는 고장 난 인형처럼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선호는 문득 밝아진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무음이었지만 화면 한쪽 대화창이 쉴 새 없이 빠르게 작동하고 있었다. 선호는 세 대의 컴퓨터 화면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실시간 중계 영상?


  선호는 고함을 지르며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의자를 휘둘렀다. 구독자님들 어때요, 오늘 스페셜 방송 끝내주죠? 으하하하, 사내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며 웃었다. 


  - 미친 새끼! 너야말로 정신을 뜯어고쳐야 해! 


  선호는 철제의자로 휠체어를 마구 내리쳤다. 사내의 욕설과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시몬은 공포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공중을 헤매다 방을 빠져나갔다. 선호 역시 시몬을 뒤쫓아 거실로 뛰쳐나왔다. 시몬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공중을 몇 바퀴 돌다 열린 현관문 틈새로 빠져나갔다. 시몬이 흘린 피가 거실과 현관문 바닥에 붉은 점처럼 떨어져 있었다. 


  선호는 시몬을 뒤쫓아 밖으로 나왔다. 세찬 바람이 어둠과 함께 얼굴을 덮쳤다. 


  - 생각 바뀌거든 다시 오쇼, 세 배로 쳐줄 테니까. 


  사내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처럼 등 뒤로 따라붙었다. 선호는 목이 터져라 시몬을 부르며 골목을 뛰어다녔다. 지영이 떠난 날 시몬이 창문으로 다시 날아들었던 것처럼, 이름을 부르면 언제든 곁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시차 부적응자와 같은 착각일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악조건 안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골목은 선호의 발소리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시몬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선호는 구부린 무릎에 손바닥을 괸 채 숨을 헐떡이며 비포장도로 끝을 바라보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시몬이 돌아올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어쩌면 확률이 없는 게 아니라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돌아오지 않는 게 정상이라 생각되는 저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안도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선호는 핸드폰 전원을 켜고 애완조 카페에 접속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시몬을 찾는다는 게시물은 올리지 않았다. 날아가거나 머물거나 혹은 돌아오거나, 그 모든 게 이제는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지영에게는 지영의 경로가 있고, 시몬에게는 시몬의 경로가, 선호에게는 선호의 경로가 있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존적으로 버티려 한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한심했다. 사내의 집으로 되돌아가 모든 걸 파괴해버리려던 충동을 접고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런 개인 방송에 사로잡혀 도네를 쏴주는 인간들에 대한 증오도 무의미한 감정의 배설일 뿐이다. 세상만사가 다 각자의 삶 안에서 생명을 위한 활동을 해나간다.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려는 것은 당연한 욕망이다. 지영이 했던 말이 화두처럼 밤하늘에 박혀 푸른 빛을 냈다.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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