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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Dec 03. 2024

2025 신예작가 / 박숲

단편소설 /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7

  7.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사내는 거래를 곧장 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였다. 시몬이 마음에 드는 눈치이긴 했다. 하지만 선호는 불안했다. 두 배의 분양비는 고시원에서 7~8개월 버틸만한 꽤 큰 액수였다. 더 이상 키울 상황도 아니었지만 시몬이 지영의 목소리로 종일 떠드는 소리를 계속 들으면 지영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영이 선호와 관계를 이어온 건, 친구가 말한 손실 회피 경향의 심리보다 매몰 비용 심리에 더 가까울지 몰랐다. 어떤 이유에서든 지영이 긴 시간 선호의 곁에 있어 준 건 대단한 인내였다. 선호는 재취업이 어려워진 이후, 폭주 기관차를 탄 것처럼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불안했다. 


  - 새는 날아갈 수도 있고 머무를 수도 있어. 새가 무엇을 하건 나는 그 새를 견딜 거야.


  새를 처음 원룸으로 데리고 오던 날 지영은 말했다. 선호는 종종 지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으나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지영이 애완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영이 선호를 향한 말의 의미는 모호했다. 선호는 그것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묻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선호는 지영의 이중적 소망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내가 한 손에 찻잔을 들고 탁자 쪽으로 다가왔다. 스르륵스르륵 휠체어 바퀴 구르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 의자 가져와서 여기 앉아요. 


  사내가 가리키는 벽 쪽에는 꽤 많은 철제의자가 포개져 있었다. 선호는 이동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 거실을 둘러보았다. 


  - 새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근데…… 


  선호의 궁금증을 알아차린 듯 사내가 휘익!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러자 어디선가 덩치 큰 새가 날아와 사내의 어깨 위에 착지했다. 시몬보다 훨씬 큰 대형 앵무였다. 


  - 이 녀석은 고도로 훈련이 돼 있어요. 내 허락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말을 하지 않고 함부로 날아다니지도 않아요. 배변 훈련까지 된 똑똑한 아이죠. 


  머리가 붉고 몸 전체가 어두운 톤의 붉은색에 푸른색이 섞인 새를 보며 선호는 감탄했다.


  - 이 녀석 말고도 대형 앵무가 몇 마리 더 있어요. 하지만 내 명령 없이 아무 때나 날지 못하죠. 


  사내의 어깨에 앉아 있는 새는 맹금류처럼 눈빛이 강렬했다. 마치 사내의 호위병처럼 위엄마저 있어 보였다. 시몬이 위험을 감지한 건지 갑자기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괜찮아, 선호는 이동장에 손을 넣어 시몬의 목을 만져주었다. 


  사내는 이동장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시몬의 부리와 발과 몸 곳곳을 꼼꼼하게 살폈다. 


  - 앵무들 언어 습득력이 좋은 건 알지만, 배변을 가린다는 얘긴 첨 들었어요. 


  선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 어떤 동물이든 훈련만 잘하면 안 되는 게 없죠. 인간도 마찬가지구요. 


  선호는 사내의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 인간이라뇨? 

  - 왜요, 인간은 동물 아닙니까?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훈련이 까다롭죠. 뼛속까지 스며든 관습이나 편견을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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