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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Dec 03. 2024

2025 신예 작가 / 박숲

단편소설 /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5

  5.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선호는 입양자에게 속은 기분이었다. 생수 한 병과 빵을 계산한 뒤 유리창 옆 탁자 위에 시몬을 올려놓았다. 시몬은 날개를 펼쳐 푸드득 몸을 풀었다. 선호의 주머니에서 문자 도착 알림이 울렸다. 


  안 오십니까


  선호는 분양을 취소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비싼 원룸에 혼자 지낼 이유가 없었다. 약간의 보증금으로 방세를 정리한 뒤 시몬의 분양비로 고시원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선호는 시몬을 계속 데리고 있을 능력이 안 되었다. 시몬까지 정리하고 나면 엉망으로 뒤엉킨 현재의 삶을 새롭게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긋난 관계란 마주 오는 차와 부딪친 것처럼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만 입힐 뿐이었다.


  입양자의 말대로 지름길인 샛길이 보였다. 샛길이라기보다 담벼락 귀퉁이가 허물어져 저절로 생긴 조그만 틈새 같은 통로였다. 간신히 한 사람이 빠져나갈 정도로 비좁고 허름했다. 대형 브랜드의 대단위 아파트 뒤쪽 담벼락에 이런 길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하긴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어디에나 넘쳐나기에 굳이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선호는 흙에 휩싸인 돌무더기를 밟고 통로를 빠져나왔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아파트 단지와는 전혀 다른 허름한 동네가 나타났다. 사내의 집은 담벼락과 지붕까지 온통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래된 이 층 건물은 음산한 기운이 곳곳에 스며 한없이 낡아 보였다. 계단을 서너 개 올라가 철제로 된 대문의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철컥,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처럼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선호는 이동장 손잡이를 든 손에 힘을 주고 대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선호는 열려 있는 현관문을 밀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 계십니까. 


  선호가 묻고 곧이어 시몬이 따라 했다. 


  - 들어와요.


  안쪽에서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개인 간 분양 직거래는 집 외부에서 대개 이뤄졌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오라니 이상했다. 선호는 신발을 벗고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걸음을 뗄 때마다 나무로 된 바닥이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냈다. 


  선호는 거실로 보이는 공간을 가로질렀다. 집의 내부는 생각보다 크고 넓고 높았다. 거실에는 집기류가 거의 없고 커다란 고사목과 포도나무 줄기로 만든 횟대가 가득했다. 마치 새들만을 위해 꾸민 공간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는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 새 가져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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