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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Dec 03. 2024

2025 신예작가 / 박숲

단편소설 /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4

   4.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선호는 지영의 새들을 차례로 분양했다. 원룸에서 새들이 한 마리씩 빠져나갈 때마다 머릿속이 환해졌다. 게다가 중형 새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당장 생활비로도 유용했다. 무엇보다 새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지영과의 과거를 청산하는 과정 같아 후련함까지 느껴졌다. 


  열 마리가 넘는 중소형 앵무들을 모두 처분하고 시몬만 남겨졌을 때 비로소, 기억이란 억지로 처분한다고 해서 말끔하게 정리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혼자 남겨진 시몬의 불안한 모습은 선호와 닮아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선호는 입양자가 문자로 알려준 위치를 재확인했다.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 104동과 105동 사이의 샛길을 찾아보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샛길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이름의 아파트 두 동 근처만 세 번째 돌고 있었다. 


  선호는 104동 입구를 지나 105동 사이로 접어들었다. 아파트 건물 옆길로 난 작은 샛길은 둥그런 나무로 이어진 계단이었다. 양옆으로 작은 바위들과 풀이 우거져 있었다. 길은 아파트 담벼락에서 끊겨 있었다. 또 잘못 온 건가. 선호는 고층 아파트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터벅터벅 되돌아 나왔다.    

     

  편의점 카운터 안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여자는 삼각김밥의 바코드를 찍고 다른 한 여자는 달걀과 샐러드를 박스에서 꺼내는 중이었다. 선호는 입양자가 일러준 아파트 위치를 물었다. 


  - 저 아래로 쭉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가시면 돼요. 


  서 있는 여자가 말했다. 시몬이 그새를 못 참고 시끄러워! 소리를 질렀다. 두 여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선호를 쳐다보았다. 


  - 손님, 지금 저희한테 그랬어요? 


  시몬이 외투의 지퍼 틈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두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시몬이 회색머리를 삐죽 내밀어 지영의 목소리로 안녕, 인사하자 두 여자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시몬이 선호의 목소리로 으하하하, 웃었다. 일어서던 여자가 가슴을 탁탁 치며, 아 놀랐잖아요, 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선호는 단지를 세 번이나 돌았지만 샛길이 없다고 했다. 


  - 아파트 단지에 샛길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박스를 옮기던 여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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