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2
2. 날아가거나 머물거나
밖으로 나오자 시몬은 신이 나서 눈을 반짝거렸다. 안녕, 사랑해, 뽀뽀, 내 거야, 라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지영이 매일 애정을 쏟으며 훈련 시킨 결과였다. 지영은 삼 개월 전 서울로 장기 출장을 가면서 선호에게 시몬과 나머지 애완조들의 사육권을 모조리 떠넘겼다. 새로 개점하게 될 대형마트 홍보 기획을 지영이 따냈기 때문이다. 한 달이라고 했지만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즈음 선호는 지영과의 관계가 최악이었기에 잠깐 떨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완조들을 빼고 나면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 아가들 밥 먹였어? 배변판은 갈아줬어? 안 놀아주면 애들 우울증 걸리는 거 알지? 이상한 말 좀 가르치지 말고.
선호는 대충 알았다고 했다. 놀고 있네,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냐. 선호는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지영이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자신이 애완조 집사로 전락한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지영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넌 새 따위가 나보다 중요해?
- 안녕, 아빠?
선호는 시몬의 부리를 틀어쥐며 소리를 질렀다.
- 누가 니 아빠야! 어우 이런 개새!
선호는 시몬을 어깨에서 끌어내려 손등에 올린 뒤 노려보았다. 시몬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지영에게 배운 단어들을 랩처럼 쏟아냈다. 마주 오던 예닐곱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탄성을 질렀다.
- 와 말하는 새다. 아저씨 얘 이름이 뭐예요?
남자아이는 선호의 앞을 가로막고 귀찮게 굴었다.
- 야, 저리 꺼져, 임마!
남자아이가 으앙 울음을 터트렸고 아이 엄마가 놀라서 뛰어왔다.
- 엄마, 이 아저씨가 욕했어.
아이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 애한테 무슨 짓이에요?
선호는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 어 내가 뭘 어쨌다고, 이 새가 개소리 한 건데.
아이가 따지듯 말했다.
- 아저씨가 욕한 거 다 봤다구요.
아이 엄마는 화를 내며 아이의 손을 붙잡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선호는 시몬의 이마를 주먹으로 탁 쳤다. 시몬이 꽥꽥 괴성을 질렀다. 선호는 시몬을 이동장에 집어넣고 지하철 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몬은 지영의 목소리로 리듬을 타듯 안녕, 사랑해, 를 반복했다. 마치 지영이 남기고 간 메아리처럼 가슴을 아리게 했다. 지하철에서도 시몬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두 배의 분양비를 생각하면 이 정도 수고로움 쯤은 당연히 감당해야 했다. 계단에서 마주친 주인은 이번 달 월세 날짜를 확인시켜주었다. 선호는 갑자기 나타난 가로수에 부딪혀 이동장을 놓칠 뻔했다. 선호는 나무 밑동을 세게 걷어찼다. 단풍나무의 붉게 물든 나뭇잎이 우수수 쏟아졌다. 시몬이 남자 목소리로 킬킬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