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1.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1.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선호는 하네스를 펼쳐 시몬의 목과 발을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시몬은 산책이라도 가는 줄 알고 유쾌하게 수다를 떨었다. 시몬을 원한 사람은 중년남성이었다. 그것 이외 입양자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거래만 잘 이루어진다면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원래의 금액보다 두 배의 분양비를 제시하면서까지 시몬을 원하는 걸 보면 뭔가 석연찮았다.
선호는 하루라도 빨리 시몬과 헤어지고 싶었다. 모든 발단이 시몬에게서 비롯된 거라 믿었다. 선호는 지영이 버리고 간 시몬을 떠맡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시몬이 안녕, 자기야, 사랑해 따위의 말을 기계적으로 읊조릴 때마다 목을 비틀고 싶었다.
- 넌 평균 이하야.
지영은 그 말을 끝으로 이삿짐센터에 의뢰해 원룸의 짐을 모두 빼갔다. 바닥에 허물처럼 나뒹구는 자질구레한 물건들 위로 앵무새들의 털과 비듬이 하얗게 흩날렸다. 지영은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선호와 관련된 모든 SNS에서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평균이란 누가 결정하는 걸까. 지영은 언제나 ‘평균’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학교 성적, 성격, 외모, 집안 내력, 하물며 경제력까지도 평균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영의 논리대로라면 평균 이하의 수준은 낙오자에 속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선호는 지영에게 평균 이상의 남자였다. 그러나 평균 이하의 수준으로 추락한 건 순식간이었다.
선호는 첫 직장을 잘못 선택한 때문이라고 믿었다. 일 년 가까이 인턴으로 이용당하다 밀려난 뒤, 다단계 회사에 걸려든 것도 잘못 끼운 첫 단추의 연쇄작용이었다. 지영의 말대로 차라리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 그도 아니면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이어갔다면 스펙 만이라도 평균 이하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선호는 지영이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약간의 용돈 정도는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두 사람의 생활비는 오롯이 지영의 몫이었다. 선호는 지영이 ‘평균’을 따질 때마다 사회구조가 잘못된 탓이지 자기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라고 우겼다. 아직 기회비용은 충분하고 평균 이상으로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큰소리쳤다. 나날이 근거 없는 자신감만 부풀린다고 비난하는 지영에게 선호는 평균 이상의 인간형이 되기 위한 계획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선호의 논리는 가당찮은 허세이며, 현실감각이 뒤떨어진 자폐적 인간들의 전형적 논리라고 지영은 비꼬았다. ‘평균 이상’의 목적 대상이 점점 한정적으로 축소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지영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평균적인 욕망은 지니고 산다. 사실 지영이 지나치게 큰 것을 요구한 건 아니었다. 지영은 농담처럼 적어도 BMW(Bus, Metro, Walk) 인생은 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비록 금수저는 아니라도 흙수저 신분을 대물림하는 삶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정도쯤이야 누구나 바라는 기본 욕구에 해당했다. 그러나 선호는,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아직도 신분제 운운하냐고 투덜댔다. 그럴 때마다 지영은 가차 없이 그를 윽박질렀다.
- 이젠 세상 보는 감각도 떨어진 거니? 차별 없는 세상을 아무리 외쳐도 신분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아니 사라질 수 없어. 그거 몰라?
지영은 남들에겐 더없이 다정하고 너그러웠지만 선호에겐 한없이 가혹했다. 언제나 야멸찬 독설로 선호를 처참하게 깨트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은행에 취직한 대학 동기는 지영처럼 현실적인 여자가 선호와 헤어지지 못하는 건 손실 회피 경향의 심리가 커서 그렇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