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8
8. 날아가거나 머무르거나
사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인간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죠.
선호는 인간을 새처럼 훈련 시킨다는 말이 묘하게 불쾌해서 한마디 했다.
- 그래요? 인간이야말로 훈련이 가장 필요한 동물이란 걸 모르시나 보네.
사내는 입언저리를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런 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선호에게 건넸다. 명함에 새겨진 여러 타이틀 중 ‘동물 정신연구소’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 좀 복잡하죠? 경영컨설턴트가 원래 직업이었는데 다리를 다친 뒤론 집에서 잡다한 일을 하고 있어요.
사내는 말하면서 이동장을 장난스럽게 툭 쳤다. 시몬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 병신! 낙오자!
순간이었지만 사내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스치는 것을 선호는 놓치지 않았다. 사내와 선호 사이에 잠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 지금은 동물들 정신을 개조하는 인터넷 방송을 주로 하고 있는데, 이래 봬도 구독자 수가 장난 아녜요. 인간의 잔인한 본능은 생각보다 강한 면이 있거든요.
선호는 사내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모른 척했다.
- 저, 어떻게 하실 건지……
본론으로 돌아가자는 선호의 얘기를 못 들은 척 사내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 사람들은 내 몸 상태만 보고 동정부터 하던데,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선호는 돌발적인 사내의 말에 당황했다. 자신도 모르게 휠체어 발판에 얹힌 사내의 두 다리를 힐끔거렸던 걸 자각했다. 선호는 재빨리 사내의 두 다리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 제, 제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선호는 민망함에 말을 얼버무렸다.
- 신체적인 문제를 정신적인 문제로까지 확대해석하고 단정해버리는데, 이게 바로 편견의 뿌리 깊은 질병이 아니고 달리 뭐겠습니까.
사내의 말투야말로 자기 편견의 세계에 고착된 사람 특유의 것으로 들렸다. 선호는 사내의 거래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
- 거래를 하자는 겁니까 말자는 겁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 도대체 어떤 인간이 정상인인가요? 정상인과 비정상인 간의 차별이라니…… 인류의 모든 비극이 그와 같은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고는 있어요?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 말만 이어갔다. 목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순간 선호는 잘못 왔다고 생각했다. 두 배의 분양비는 함정일 것이다.
- 편견은 당연히 안 좋죠.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닌가요.
- 그럼 비극이 왜 생기는지 아십니까?
사내는 선호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물었다. 당신의 헛된 망상에서 비롯된 거라고 쏘아붙일 뻔 했지만, 선호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말했다.
- 비극은 관점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닌가요?
처음 보는 사내와 이따위 말씨름이나 하고 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허허 그런가요? 내가 뭔가 하나에 꽂히면 푹 빠지는 타입이라 말이죠.
- 새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선호는 손을 뻗어 이동장 손잡이를 잡았다.
- 이제 8시밖에 안 됐는데 얘기나 좀 더 나눕시다. 보아하니 바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 입양을 원하는 거 맞습니까?
선호의 다그침에도 사내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시몬을 주시했다. 곧이어 자신을 따라오라며 휠체어를 움직여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망설이던 선호는 어쩔 수 없이 사내를 따라갔다. 시몬이 지영의 목소리로 안녕, 안녕하세요, 애교를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