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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Feb 12. 2024

왜 조문을 안 가는 걸까?

진짜 돌아가셨는데...

(intro)

브런치가 어렵다.

브런치북 연재로 2개의 작품을 쓰고 있는데, 이제야 깨닫게 된다. 작품 2개의 특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하나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시점으로 나를 조각모음 하며 스스로를 발견해 나가는 경험 적기 위해 만들었다면, 또 하나는 평소 쓰던 일기를 브런치에 쓰면서 꼭 그날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떠오르는 지난 이야기를 적으면서 글쓰기를 해보려는 의도였다.


일주일쯤 되니... 두 작품에 혼선이 빚어진다.

삭제하고 새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만났다.


모르겠다.


이런 과정도 마지막 쯔음에는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려나?


오늘은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결혼 22년 차인 지금의 나에게 명절은 더 이상 골칫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신혼의 나에게 명절은 아이러니의 대잔치였다.

결혼식을 올리기 한 달 전 추석이 있었다. 예비 시댁에 인사를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에 와 주십사 인사하는 자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5년간 본 시댁도 아닌 큰집으로 꼬박꼬박 올라갔다. 하루만 자고 와도 될 것을 이틀을 자고 왔다. 명절 전날 올라가서 명절 다음날 내려왔으니...


그렇게 했어야 되는 이유 중에는 큰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 한몫했다.

집안의 어르신인 데다 아버님이 많이 의지하고 따르던 분이다. 아버님은 우리 부부를 앞장 세워 큰집에 갈 때면 어깨가 더욱 넓어지셨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버님과 남편의 무의식은 묘하게 닮아 있다. 자랑하고 기죽이는 것이 그들의 즐거움인 것 같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매번 명절에 끌려가다시피 하다 언젠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야 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으며 앞으로 명절에는 혼자서라도 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아버님의 기가 찬 표정과 남편의 울그락 불그락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매년 명절마다 큰집으로 갔어야 했던 이유에는 큰아버지의 건강이 1순위였다면 그다음은 매번 바뀌었다. 해외에서 고모님이 오셨다. 집안의 누가 결혼한다고 인사 왔다. 중요한 회의를 해야 된다 등등으로 주제를 바꿔 꼭 올라가게 했다. 막상 명절 당일이 되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의 물음표를 숱하게 던져야 했고, 신혼 초에 흡연을 했던 나는 걸핏하면 근처 지하철 화장실로 달려가 3개 정도는 피워야 진정됐었다. 여행 가겠다고 선언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다음 명절에는 시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어떻게 포장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건강을 걱정했던 큰아버지는 볼 때마다 더욱 정정해지시고 목청도 크고 술의 양은 줄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아버지의 건강은 남편과 아버님의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2년 차인 지금...

어제 아침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이 여기저기에 전화를 돌린다. 곧장이라도 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통화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 역귀성에 차편도 없고 지금 운전해서 가기에는 너무나 막힌다는 것이다.

근처 친척들도 막상 차편을 구해보니 표가 없어 다음날 움직이기로 하셨단다.


나에게 참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죽음 소식이 많은 우리 집에서는 죽음이 알려질 때마다 곧장 움직였다. 어떻게든 장지로 향했다. 그런데 22년 전 큰아버지의 건강을 이유로 새댁을 명절 때마다 앞장 세워 가게 하던 두 사람이 가장 조용하다. 아버님은 최근 쓰러지신 경험이 있어 병원에서 안정을 권했다. 때문에 먼 길을 못 떠나신다. 아주버님은 생업이 바빠서 못 움직인다고 한다. 남편은 어쩐 일인지 소극적인 태도다. 근처 사는 친척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면 그렇게 오랫동안 겪었다는 남편과 시댁 가족이지만 내가 어려서 겪던 문화와 너무나 달라서 아이러니하다.


왜 조문을 안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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