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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Apr 03. 2024

내면의 치료자

그때의 너는 해맑았구나

며칠째 억울함과 괘씸함이 밀려온다.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급적 오랫동안 머무를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사고를 칠 것 같았다. 그래서 찾아 간 한옥 책방에서 명상을 시작했다.


이 억울함의 시작을 찾아보기로 마음먹는 순간 100원을 받겠다고 그 많은 빨래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그 아이를 구하러 가야 되겠구나 싶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그날을 찾아간다.

그 아이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방에는 여자들 대화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들락거리는 동네 꼬마들... 나는 부엌에서 빨래한다. 빨간 대야 앞에 앉아서 빨래한다. 손이 시린데도 빨래한다. 그래야 될 것 같다. 아무도 나한테 왜 하냐고 묻지 않는다. 마치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다지 억울해하는 표정은 아니다. 내가 이걸 하고 나면 돈 1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다지 억울해하지 않는다. 다만 양이 너무 많아서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으니까 답답해한다.

내가 그때의 나에게 물었다.     

‘에구... 이 많은 빨래.. 네가 하고 있네.’

‘응. 이거 하면 100원 준댔거든.’

‘100원 받으면 뭐 하려고?’

‘그냥 군것질이나 하지 뭐. 다른 애들 아폴로 사 먹던데 나도 그거 먹으려고.’

‘그냥 빨래 안 하고 100원 달라고 하면 안 돼?’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달라고 하면 잔소리가 심하잖아. 그냥 이거라도 하고 당당하게 받는 게 좋아.’     

‘너는 당당한 걸 좋아하는구나.’

‘응! 나 당당하게 살랬어. 남의거 얻어먹으려 들지 말고 비굴하게 징징대지도 말고... 그래야 평생 내가 씩씩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했어.’

‘누가?’

‘할머니가’

‘할머니가 좋은 걸 가르쳐 주셨네... 그런데 너무 힘들면 안 해도 돼. 하기 싫다고 해도 돼. 그래도 괜찮아.’

‘응 알았어. 고마워. 다음에 하기 싫으면 그때는 안 하고 싶다고 할게. 알려줘서 고마워.’

.

.

.

울음이 난다. 그 아이는 해맑다. 너무나 해맑다. 맑은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 아이가 하는 일은 그냥 그 아이의 즐거움인가 보다. 남의 눈에 안쓰럽게 보이고 안타까워 보일지라도 최소한 그 아이는 즐긴다. 당당함을 즐긴다.     


그 아이를 바라본다. 당당한 척 연기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저 당당한 아이다. 그렇구나. 억지로 하기 싫어서 하는 아이가 아니구나. 뭔가 좀 불공평하긴 하지만 그래도 100원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이구나.



갑자기 억울함이 싹 가신다.

내가 그때 그 아이를 구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때의 그 아이가 지금의 내 억울함을 말끔하게 해소시켜 준다. 그 아이는 100원 받고 빨래를 해도 그저 해맑았다. 그 맑음에 30년 후의 내가 치유된다.

이 억울함은 그때의 나를 돌아봐 달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항상 과거로 돌아가 뭔가를 정화하고 치유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는 과거로 돌아가 그때 그 아이로부터 치유받았다.


오늘을 나로 잘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미래에 힘들어할 나 또 일으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해맑은 그때의 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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