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온라인멘토 #최선경선생님
잠시 브런지 글을 중단하려 했는데, 댓글이 하나 있었어요. 나의 글을 진심으로 읽어 주시는 누군가가 있구나 생각하니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네요. 블로그에 거슬리지 않는 주제로 거슬리지 않는 글을 쓰고 있지만, 브런치 통해 조금은 더 자유롭게 나의 생각을 펼쳐볼까 싶었습니다. 어느 날은 그 누구도 나의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어요. 자유롭게 마구 휘갈기고 싶거든요. 표현하려는 꿈틀거림은 늘 나를 흔듭니다. 그러나 내심 나는 나의 글을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어요. 나도 그런 그런 속물이자 내 안에 인정의 욕구를 멈출 수 없는 공동체 생활로 결국 생존했던 호모 사피엔스의 자손입니다.
내일은 대구에 내려가요. 교사성장학교 고래학교 리더이신 최선경 선생님의 특강을 들으러 갑니다. 나는 많이 변화했어요.
만남. 그리고 변화
기억 속 만남 1 - 이난영 선생님
그때만 해도 나의 여중 선배언니들 중 다수는 졸업식이 끝나면 부모님이 꾸려준 짐보따리를 싣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단체로 탑승했어요. 구로공단이나 어느 산업단지로 직행하는 버스였던 것 같습니다. 나도 그 버스를 타고 오빠의 학비를 벌어주고, 가난한 부모님의 생활비를 보태는 살림밑천으로 여공의 생활을 시작해야 했을 운명이었습니다. 72년에 태어난 나는 그나마 경제발전이 급속히 진행되던 80년대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아슬아슬하게 구로공단행 버스를 피할 수 있었던 행운의 세대이기도 했네요. 중 3 담임선생님은 나의 운명을 아시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장학금을 지급하는 산속 외딴 여고에 나를 추천했어요. 아버지를 설득하신 거죠. 오빠는 공부를 탁월하게 잘했고 우리집 형편은 월세를 전전했기에 나의 운명도 구로공단행 버스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아마 선생님의 간곡한 설득과, 장학금과 기숙사라는 좋은 제안이 아버지를 움직인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사랑하는 아버지는 평생 '명태와 여자는 두들겨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시던 무지하게 보수적인 분이셨으니까요. 딸을 공부시킨다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으셨죠.
기억 속 만남 2 - 사촌도 아닌 먼 육촌 새언니
오빠의 부인도 아니고, 사촌오빠의 새언니도 아닌, 먼 육촌오빠의 새언니가 나를 받아주었습니다. 당시 딸을 서울로 보내는 게 못 미더웠던 아버지는 육촌 새언니에게 나를 부탁한다며 시골 생활로 까매진 손으로 연신 곱고 하얀 서울 새언니의 손을 부여잡았습니다. 육촌 새언니는 서울사람 맞는지 손도 목도 얼굴도 심지어 입술조차도 하얬지만 나를 '불쌍하다'며 거두어 주었어요. 무엇을 좋게 보셨는지 육촌 새언니는 나를 주말이면 초대했고 슬슬 '교대입학'을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맛난 음식을 차려 주셨고 두 조카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어요. 오빠는 또 말해 뭐 한대요? 지금의 나는 늘 남의 고통은 모른 체하고 귀찮은 일에 엮일 새라 피하기 급급한데 육촌 새언니는 아니었어요. 집요했고 정성이었고 무엇보다 진심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만 해도 생소했던 반수를 했고 '교대'로 학교를 바꾸었습니다. 이화여대를 버리고 교대를 선택하는 일이 뜨거운 청춘에게는 쉽지 않았는데 나는 새로운 삶을 선택했고, 교대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그날부터 나는 스스로 내 인생을 선택하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이죠.
만남 3 - 온라인에서 만난 멘토 선생님, 고래학교 최선경 선생님
가장 최근의 만남이기도 해요. 어떤 연고도 없이 온라인에서 연결된 만남이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만남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얼마든지 확장 가능하다는 것 말입니다.
4년 전 코로나 19 2년 차로 무료한 일상이 계속되던 그 무렵, 나는 온라인 교사성장학교라는 모토의 고래학교 모집글을 보게 되었고, 무슨 끌림이 있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신청을 했어요. 1년의 작지 않은 회비를 네이버 검색 한번 해 보지 않고 덥석 이체했고, 그 무모함이 나를 고래학교 최선경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연결시켰습니다. 끊임없는 실천과 다양한 활동, 그리고 온라인 교사모임을 이끌어가시는 최선경선생님은 놀라움 그 자체였어요. 저런 분이 현실에 있다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교사성장에 대한 헌신은 놀라웠습니다. 고래학교는 1년 회비로 작지 않은 돈을 내지만 월별로 생각하면 그리 큰 금액이라고 할 수 없었어요. 가장 놀라운 것은 고래학교 소모임 행사에 대구에서 서울을 신림동에서 의정부 가는 느낌으로 자주 올라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운더리가 작았던 나는 실은 그것이 가장 놀랍고 존경스러웠어요. 오늘 나는 처음으로 최선경선생님의 애리어인 대구로 내려갑니다. 티솔루션 교육콘서트에서 최선경 선생님께서 프로젝트 학습 수업사례 나눔이 진행되는 대구입니다. 4년을 단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던 와중에 물론 바쁜 일정이 많은 최선경 선생님이지만 최선경 선생님은 고래학교 교장이라는 타이틀로 그리 많이 오갔어요. 심지어 고래학교 성과공유회는 언제나 서울의 모 교육세미나실이었습니다. 나눌 것이 많아 그런 지는 모르지만, 많을 것을 나누시고 자극하시는 최선경 선생님을 보며 나도 어느새 성장하는 교사가 되어 있었어요.
예전에는 성장의 멘토 선배교사를 학교에서 만났다면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그런 건지 나만 특별히 그랬는지 온라인에서 만나게 되네요.
특별한 만남이 나를 바꾼 세 가지 만남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난영 선생님, 육촌 새언니, 최선경 선생님!
사람은 사람으로 변화하나 봅니다. 생성형 AI의 시대, AI에게 감정을 느끼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AI의 허상은 사람인지 몰라도 실체는 0과 1의 코드일 뿐 36.5도의 따뜻한 피가 흐르는 온기를 가진 사람은 아니지요. 미래에 멘토는 AI소크라테스나 AI공자 AI세종대왕일 수는 없습니다. 결국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실수도 하고 열정도 뿜어내는, 결국 사람입니다. 어쩌면 더욱더 그리워하게 될 것은 사람의 온기 아닐까 싶어요.
온기를 가진 사람으로 나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데워 주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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