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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꾸신발 Dec 20. 2022

08.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얼마 전에 지인 모임에 나갔다. 사실 컨디션이 아주 좋지는 않았는데 오랜만에 친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나를 위해 마시던 와인을 조금씩 남겨 두었다.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 금주중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나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모임에 참석한 8명 중 나를 포함해 딱 절반인 4명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었고, 한 명은 아직도 약을 복용 중이었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정말 우리의 가까이에 있다. 정말 심하지 않은 우울증 환자들은 일상생활이나 직장 생활에 큰 문제를 보이지 않으며 (물론 본인은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세심하게 관찰을 해 봐도 우울증 환자인지 알기 어렵다. 내가 다니는 정신건강의학과는 회사들이 많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점심시간이나 야간 진료를 받는 환자들이 많은데, 대기 중인 환자들을 보면 옷 차림새라 외모로는 전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당연히 직장 내에서 만나게 되는 피상적이고 업무 중심의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우울증 환자임을 드러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로는 첫 번째로는 우리나라에 아직도 공공연하게 남아 있는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낙인 때문일 것이고, 두 번째로는 그러한 관계에서 굳이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고백한다고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을 받으면 다행이고, 직장생활의 가십거리가 되거나 아니면 실제로 인사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는 괴로운 동시에 외롭다. 사람 바이 사람이겠지만 나의 증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위로를 받고 싶다. 당신이 우울증 환자와 좀 더 가까운 사이라면 환자의 증상이 심할 때는 어렴풋이 눈치를 채거나, 아니면 직접적인 고백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울증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우울증'이라는 병의 깊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단순히 직장 상사에게서 혼이 나서,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생기는 스트레스/우울감과 우울증의 우울감은 그 깊이가 다르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노오력으로는 증상의 극복이 불가능하다.


나의 증상을 진지하게 부모님께 이야기했을 때 들은 이야기는 '네가 부족한 게 뭐냐, 화목한 가정도 있고, 집도 있고, 직장도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 극복을 해야지'였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면 '우울증 환자에게 해서는 안될 말' 중 맨 처음에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한참 동안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하고 나서야 약간은 나의 증상에 관해 이해를 하시는 듯했다. 물론 부모님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아니고 우울증을 겪어본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위로받고자 했던 마음의 상당 부분이 실망으로 채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울증 환자를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은지 정답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에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나는 너의 편이며, 지금 나는 너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다고. 비록 그런 말들이 바로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따뜻한 위로는 마음속 깊이 남아 언젠가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불씨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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