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서 우울과 불안, 강박 등의 감정은 파도처럼 왔다가 떠나갔다가 한다.
나는 유리컵처럼 아주 투명한 사람이라 그 파도의 형태마다 눈빛이 달라진다.
나에게 불안의 파도가 밀려와 잠식되어있을 때의 모습을 보고 J는 ‘미어캣’이라고 한다.
내가 J의 목덜미에 가만히 코를 가져다 대고 익숙하고 포근한 향기를 맡으며 심호흡을 할 때
내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리며 ‘흠.. 미어캣이 됐구먼’이라고 하는 식이다.
오늘의 미어캣은 J와 합정의 조용한 카페 Phd에서 만나서 <미어캣의 Happy 제주 Life>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러니까는 제주에서 뭘 얻고 싶은가? 를 한 문장으로 하면
‘회복해서 다시 새로운 꿈 꿀 수 있게 준비하기’이다.
너무 많으면 강박이 되고, 너무 없으면 아무것도 바뀐 것 없이 그냥 존재만 하다 올 것 같아서 몇 가지만 좀 추려봤다.
네트워킹을 통한 삶의 다양한 방식 배우기
무기력 없애기
건강 회복. 머리 쓰는 거 말고 단순한 거, 몸을 움직이고 해 보는 것
이 3가지가 다다.
이 다음으로 넘어간 가지들에 대해선 적지 않겠다. 그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정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게 또 다른 강박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알아본건 목공 수업이랑 제주에 사는 친구 K를 통해 추천받은 프리다이빙인데, 그 외엔 뭐가 있을까 생각 중이다.
( 목공 수업은 <사계인테리어목공기술학원>, 프리다이빙은 <제주프리다이빙 안쌤프리다이브>. 혹시 번아웃 온 개발자가 제주 한 달 살이 하면서 하면 좋을 거 같은 거 있으시면 추천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립니다! ☺️)
밖에는 잠깐의 소나기가 내린다. 하지만 이젠 안다. 이 소나기는 금방 지나가고, 그 다음은 더 맑은 하늘과 시원하고 깨끗한 바람이 불 거라는 걸..
J와 헤어지고 S의 집에 왔다.
베란다를 통해 조금씩 들어오는 은은한 담배 냄새, S의 시그니처 러쉬 향, 그리고 내일 아침 S가 자고 있을 때 깨끗이 치워주면 좋아하겠지 싶어서 기분이 내심 미리 뿌듯해질 정도의 어지럽힘이 있는 S의 집.
S와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를 봤다.
이 영화에서 남편인 츠레는 우울증에 걸렸다. 도시락을 쌀 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버거운 거처럼 싱크대에 상체를 지탱하고 있는 뒷모습,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진자 운동같은 마음의 감기 모두 내가 경험한 기분, 증상과 비슷했지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나는 쓸모가 없어’라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점차 그저 느낌과 생각을 넘어서 확신이 되어간다..
이 회사에서 나는 쓸모가 없고 동료에겐 도움이 안 될 뿐이야.
내가 여기 있어도 될까?
J에게, S에게 시들시들한 나는 신경 쓰이는 뭔가 일 거고, 이들도 힘들 텐데 나까지 짐이 될 순 없어.
이 병에 걸리면 주변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네가 옆에 있어줘서 나는 너무 고맙다고 해줘도 정작 들리지 않는다. 고약한 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그저 묵묵하게 함께 있어주는 것, 나도, 그리고 내 옆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애쓰지 않는 것’ 이 느리게 보여도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인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동료들에게, 그리고 익명의 세상에게 말해볼까 한다.
" 제가 우울증에 걸렸어요! 병원에 다니고 약도 잘 먹고 있어요.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그 외에는 열심히 해볼게요! 병에 걸린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같이 공감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
영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