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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던트 비 Sep 07. 2024

Chapter 1-2  동물로 태어나서 공부는 무슨

 P A R T  1   공 부 의  시 작

    

사자가 궁전안으로 들어서자, 아버지 사자가 언제나 그렇듯이 근엄한 표정으로 아들을 맞이하며 말했다.


“멜렉(Melek), 왕위를 물려받을 날도 이제 일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구나. 마음의 준비는 잘 하고 있지?”


“네.” 젊은 사자가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아버지 사자가 추궁하듯 물었다.


"멜렉, 요즘 인간의 책을 들고 다닌다는 제보를 들었다. 그게 사실이냐?”


“아버지, 동물들이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또다시 공부 타령을 하려고 하는구나. 철 좀 들어라 아가야. 니가 나이가 몇 살인데 공부를 하려는 거냐. 몇 번이고 말하지만, 인간의 지식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한테 맞는 방식이 아니야.” 



순간 아버지 사자의 왕좌 옆을 밝히고 있던 횃불이 흔들리면서 아버지 사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버지,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지식을 공부해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일부라도 받아들여야 해요. 이 물건을 보세요. 인간들은 이제 세상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며 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일들을 해내고 있다고요.”


" ‘제어'라고? 그래 인간들은 공학을 배우면서 그런 말을 하지. 그럼 말해 보거라. 인간의 지식으로 자신들의 사회를 제어하더냐, 아니면 자연을 제대로 제어하더냐. 자신의 개체 수 하나 조절 못 해서 메뚜기 떼처럼 늘었다 줄기를 반복하고, 자연의 모습은 복잡계라고 부르면서 하나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아버지 사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완벽한 제어를 보려거든 바람을 날개로 받으며 공중에 떠 있는 새를 보아라. 인간들처럼 현란한 수식을 쓰지 않아도 자연의 흐름을 몸으로 체화하면서 조절할 수 있지.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지식이야.”


이때 궁전의 어두운 구석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던 흑표범이 슬며시 걸어 나오더니 아버지 사자의 말을 이어갔다. 흑표범은 아버지 사자에게 동물 세계의 운영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다가, 아들 사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잠시 자리를 피해 있었다. 하지만, 두 사자의 대화를 듣다가 참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내며 냉소적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동물들이 공부하면 이 세상이 얼마나 흉측하고 괴상할지 상상해 보았나요? 게다가 동물들이 공부를 한 번 시작하면 인간들처럼 문명을 만들고 성장하고 싶어 할 거예요. 거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죠.”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기 힘들어요.”


젊은 사자가 억울한 듯 자신의 논리를 펼치려다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후 잠시 침묵이 흘렀고, 아버지 사자가 한숨을 쉬더니 못 이기듯 말을 꺼냈다.


“멜렉(Melek), 너는 머지않아 왕이 될 것이야. 그전에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한다면 내가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인간의 지식이 화려해 보이고 우리 동물들이 지고 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야. 지금 잘 나갈 때 인간들이 한껏 잘난 체하고 우리를 비웃으라고 해라. 자연의 긴 호흡에서 보면 저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에 불과할 뿐이니까.” 아버지 사자는 벽으로 가서 로마시대에 살았다는 선대 사자의 전리품 '검투사의 검'을 집어 들더니 칼날을 앞발로 쓸어내렸다. 1)


“네. 아버지.” 젊은 사자는 내키지는 않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석)

1 아버지 사자는 과거 동물 세계의 왕위에 오르면서 '자식 교육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라는 새로운 교육 정책을 내세웠었다. 아버지 사자가 이러한 결심을 굳히게 된 데에는 아버지 사자를 지근 지척에서 보좌하는 '흑표범'의 역할이 컸다. 흑표범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동물들이 인간 지식을 공부하게 되면 성장을 갈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들처럼 서로 불화에 휩싸이게 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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