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인지 질문한다.
하지만 나는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질문했다."
- 파블로 피카소 -
까마귀, 앵무새, 코끼리, 그리고 돼지 등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동물들과 사자가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보고 있다. 동물들은 시험지에 적힌 4지 선다형 문제들을 풀고 있고, 모두들 시험에 집중하느라 고요한 가운데 또각또각 문제 푸는 연필 소리만 들렸다.
“종료 오 분 전!”
시험의 끝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는 안내가 들리자, 사자는 다 풀지 못해 넘어갔던 문제들을 되짚어가며 답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문제들을 둘러보면서 시간만 좀 더 있었으면 제대로 풀어 볼 수 있었겠다 싶은 아쉬운 문제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도 촉박한 지금으로서는 되는 대로 답을 적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치자 사자는 연필을 내려놓고 두 앞발을 머리 위로 올렸다. 시험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사자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갈기도 서 있었다.
사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시험을 본 동물들이 뭔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찜찜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의 백지를 냈던 저번 시험과 비교해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확신을 가지고 답을 쓰기에 아리송한 문제들이 여전히 있었지만, 그동안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그래도 전에 비해 눈에 익은 문제들이 꽤 보였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이번 시험의 감독관인 고릴라가 한 손으로 시험지를 걷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바닥을 짚으며 교실을 한 바퀴 돌아 교탁 앞에 서서 한동안 채점하더니 바로 점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앵무새 4점, 까마귀 4점, 돌고래 8점, 코끼리 8점... 이번 시험 1등은 세 문제를 맞혀 12점을 받은 사자야.”
고릴라의 발표에 사자가 앞발을 불끈 쥐며 소심하게 세리머니를 하자 고릴라가 이어서 말했다.
“수고들 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 인생팁을 하나 주자면 다음부터는 답을 4지 선다중 하나로 통일해서 찍어봐. 너희도 언젠가는 나처럼 25점을 맞을 수 있을 거야.”
“사자 축하해. 네가 진득하게 정자세로 앉아서 시험 보는 걸 보고 네가 시험을 잘 볼 줄 알았어.”
앵무새가 사자에게 다가가 칭찬의 말을 건넸으나, 사자의 표정은 떨떠름하게 변해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등을 했다는 발표에 신이 났었는데, 갈 길이 멀다는 고릴라의 말에 왠지 마음이 허탈해졌다
“즐기면서 공부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공부를 덜 좋아하는 걸까? 나는 분명 공부가 좋은데...”
"아무래도 시험에서 영장류보다 잘 보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 고릴라 말고 인간은 같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대."
"100점?"
사자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지식이라는 것이 모조리 인간의 책에 쓰여 있는데, 우리는 그걸 읽을 수가 없으니까 절대적으로 불리한 거지. 아무튼 네가 10점을 넘겼다는 것만으로도 동물의 왕으로서 권위를 지킨 거라고 생각해. 다시 한번 축하해.”
"지식이 쓰인 책이라..."
앵무새의 말을 되뇌던 사자는 무엇인가가 자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 찌르는 느낌이 점점 더 아파져 오는 가운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있는 다람쥐가 자신을 깨우기 위해 막대기로 열심히 찌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사자는 동물들이 모여 시험을 본 것도 자신이 10점을 넘겨 동물들 사이에서 1등을 한 것도 모두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자는 얼굴을 좌우로 털더니 다람쥐에게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람쥐, 내가 꿈에서 시험을 봤는데 10점을 넘겼어."
"10점을 넘기다니 대단한데? 네가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자꾸 그런 꿈을 꾸나보다.”
다람쥐의 말은 들은 사자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자신이 발견해 가지고 다니던 책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사파리 여행을 온 인간들이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흘리고 간 책이었다.
“혹시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동물이 세상에 있을까?”
“글쎄, 인간 세계 주변에 사는 동물들도 많이 있으니까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 어쨌건, 사자야 아버지와의 면담 시간에 늦기 전에 빨리 들어가 봐. 그 책은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게 여기 두고 가고.”
"알겠어."
다람쥐의 말에 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둥지둥 아버지 사자의 궁전으로 뛰어들어갔다. 1)
1) “아버지 사자의 궁전”(Lion’s Palace)은 이집트 악숨에 위치한다. 이곳은 에티오피아의 전설적인 여왕 시바의 비밀 별장이었다고 알려진 곳으로, 이제는 사람들에게 잊히고 동물들의 왕인 사자를 위한 궁전으로 쓰이고 있다.
악숨(Axum)은 에티오피아의 고대 왕국인 악숨 제국의 수도이다. 악숨 제국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솔로몬 왕(King of Solomon, 아랍어로 슐레이만)과 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네리크(Menelik)가 건설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전설에 의하면 메네리크가 아버지 솔로몬왕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그곳에 있던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언약궤가 아직도 에티오피아의 악숨에 보관되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