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학교란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모든 교육과 성장은 자발성으로부터

by j kim

"교사들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학교 뿐 아니라 모든 조직과 공동체는 마찬가지다. 좋은 조직은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 누군가의 지시나 강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여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을 때 그 조직은 비로소 빛이 나고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자발성'이라고 한다면 과연 '자발성'은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까. 내가 조직의 관리자라면, 혹은 리더라면 개별 구성원들의 '자발성'은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조직을 경영하고 운영하는 측면에서 아주 오래된 고민이며, 수많은 좋은 리더들에 의해 여러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어온 분야다. 여러 조직마다 특성과 목표가 다르기에 조직마다 최선의 방안과 방향성이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는데, 학교도 그 조직 나름의 특성과 목표를 갖기에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방안은 나름대로 특별할 것이다.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고 교사들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기저에 깔려야 하는 철학은 교사들의 '자율성'이 늘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스스로 열심히 움직이고 노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교육과정을 스스로 구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업무와 관련한 결정을 실무자가 스스로 얼마 만큼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핵심적이다. 학교라는 조직은 구조적으로 다수의 교사가 학급 담임을 맡아 학년을 이루고 여러 학년이 모여 학교가 이루어지는 만큼 교사 개인이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어렵다. '독단적'이라는 말이 조금은 지나칠 수는 있으나, 학급 담임이 자기 학급 운영과 교육과정 구성 운영에 생각보다는 자율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교사들은 자신의 교육과정이나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가 조직이나 관리자(위계)에 의해 꺾이게 되면 자율성이 없다고 느낀다. 자신이 학급 아이들을 위해 고민한 교육활동이 외부에 의해 실시할 수 없게 되면 자율성이 꺾이고 이때부터 스스로 움직이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는 점차 사라져간다. 심지어는 '어차피, 안된다고 할텐데. 막힐텐데. 고민하는 것 자체가 아까우니 아예 고민조차 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자율성을 뺏음으로서 수동적인 구성원을 만들지 말자"


의사결정 측면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다수의 학급이나 학생이 참여하는 큰 규모 혹은 전체 학교 구성원들의 교육활동이나 학교 전체에 영향이 있는 사안의 실시 여부를 놓고서는 관리자와 교사를 포함한 모든 학교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의사결정 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 이때는 모든 구성원이 전체 중 1인으로서 참여하여야 한다. 누군가의 목소리나 의사결정권한이 더 크게 되면 이는 다수의 협의가 아니라 위계에 의한 결정으로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체 교사들의 의견과 관리자의 의견이 다르다면 협의를 통해 조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여 움직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의견이 다를 때 만약 관리자의 의견에 의해 의사결정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그 조직은 완연히 빛과 생명을 잃는다. 이럴 때 개별 교사들은 '아무리 고민하고 이야기 나눠봐야 어차피 관리자 뜻대로 될텐데 그냥 고민하지 말자.' 라는 식으로 점점 무기력해진다. 교사가 고민 없이 살게 되면 교육은 힘을 잃는다. 만약 그 교육활동이 관리자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운영한다고 치자. 어떤 교사가 자발적으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그것에 참여하겠는가. 실제 교육을 운영하는 교사가 납득하지 못하면, 아이들도 납득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모두가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그 교육은 아이들에게도 별다른 교육적 의미를 주지 못하고 그저 껍데기만 남는 공허한 교육활동으로 전락해버린다.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율성의 보장이 가장 우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교사(구성원)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우선이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이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낼때도 마찬가지다. 자율성의 울타리를 크게 지어 아이들에게 넓은 배움터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그 자율성을 활용해 좌충우돌하며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게 바로 자발성의 발현이다. 자율성 없이는 자발성도 없고 자발성 없는 배움에는 성장도 있을 수 없다.


연말이 되어 학교는 지금 업무분장이나 학년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기다. 만약 업무분장, 학년희망에 있어 '체계'가 없이 관리자의 뜻대로 결정이 좌우된다면. 구성원들은 열정을 가지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정해진 약속이나 체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구성원은 납득하고 받아들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관리자의 독단에 의해 정해지는 결정들이라면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에 의해 정해진 결정에 구성원이 따라야 한다면, 교사가 좌절을 안고 시작하는 일년동안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믿는다는 것은 의심을 차츰 거둬가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우선' 믿어야 한다."


다시 교사들의 관점으로 돌아가자. 구성원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려면, 외적보상에 의한 동기부여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은 언제나 내적보상을 통한 움직임과 열정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을 향한 가장 궁극적인 내적보상은 무엇인가?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내적보상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의 내적 동기부여가 있겠지만, 존중과 인정. 기본적으로 '신뢰'가 가장 필요하다.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려면 근본부터 믿어야 한다. 의심을 아예 안할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신뢰를 계속해서 내비쳐야 한다. 내가 당신을 믿고 지지함을 계속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의심을 근본적으로 거둘 수는 없을 수 있다. 그래도 그 의심을 안고 가더라도 믿음을 계속해서 표현해야 한다. 보통 충분한 소통이 있다면 믿음과 지지를 받는 대상은 언제나 성장한다. 그러면서 그 '의심' 차츰 거두어진다. 그러면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성장은 차츰 옳은 방향으로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은. 우선은. 누군가를 믿는게 우선이다. 의심하면서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목표가 무엇인가? 비전이 무엇인가? 성장이란 무엇인가?"


나는 학교는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도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교사는 당연하게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성장할 수 있지만 교사 공동체끼리도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사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구성원들끼리의 목표와 비전에 대한 이야기 나눔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학교는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은가? 우리 학교는 어떤 학교가 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거칠지만 근본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따위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학교의 교훈도 있고 나름의 목표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바탕에 깔리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은 부족하다. 우리가 이 학교에서 어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구성원은 어떤 지향점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그 방향성이나 철학에 대한 것이 학교내 구성원들끼리 반드시 공유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학교의 리더들은 구성원들끼리 그런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학교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목표나 철학을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근본적인 이야기들이 나누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도록 하는 것이 리더들의 역할이다.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혼란스러울 뿐 공동체의 나아감과 공동체의 목표와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가 충분히 나누어진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성과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방향과 목표는 리더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터'를 닦아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지 그것을 정하고 일방적으로 던지는 것은 리더로서 잘못된 행동이다. 게다가 그런 행위는 구성원들이 신뢰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목표와 방향을 정할 수 없다면? 아 리더는 우리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방향부터 목표부터 그 바탕부터 구성원들이 스스로 이야기 나누어 정할 수 있도록 하자. 리더도 결국은 그 조직의 구성원 중 하나가 아니던가.


구구절절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한 것이 구성원들의 '자발성'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자발성이 극대화된 학교에서 수년을 살았다. 그리고 대가없는 그런 열정과 헌신들이 공동체를 어떻게 아름답게 만드는지 그곳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른들의 성장과 노력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헌신을 오롯이 받아가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지켜봤다. 그런 학교의 아이들은 인간으로서의 삶 자체가 달라진다. 학교에서 사는 어른들의 헌신은, 성장은 결국 아이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니 학교는 스스로 움직이는 교사들과 어른들이 많아야 한다. 좋은 학교라면 무릇 그래야만 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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