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녀가 시골에 살면 이렇게 됩니다

여주 산속에서 10개월 살아본 썰 by 믹서

by 유유히유영

꼭 한번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다. 평생 서울에 살면서 자연을 갈망했다. 2년 전 나는 회사 인간으로 꼭 10년을 채우고 조직 생활에서 해방됐다. 직장이 서울만 아니면 양평 같은 외곽에 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니, 퇴사 후 시골행은 수순이었다. 당시 거주 중이던 신도시도 살기 좋았지만, 우리 부부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기에 최적인 신도시는 4인 내지 5인 가족에게 맞다고 여겼다. 우린 조금 멀리 떠나기로 했다.


전원생활의 로망을 현실로


이사를 계획하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퇴사를 했으니 출근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일은 계속해야 했으니 서울과 너무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가야 했다. 마음 같아선 최애 도시인 ‘속초’로 가고 싶었지만 아직 강원도로 갈 상황은 아니었다. 새로운 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그때 다시 고려하기로 하고, 일단 경기도 인근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네이버 부동산, 직방 등 온라인으로 최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마음에 드는 집 몇 개를 찜했다. 가장 흥미로운 집을 제일 먼저 가보기로 하고 시동을 걸었다. 그곳은 경기도 여주의 한 시골집이었다. 동네 어귀에 꽃이 예쁘게 핀 사진을 보니, 직접 가서 실물을 영접하고 싶었다.


한 40분간 고속도로를 달렸고, 비포장도로로 10분을 더 갔다.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펜션처럼 생긴 아담한 2층짜리 주택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는 집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직접 지은 집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안방에 들어가니 아랫목이 뜨거웠다. 구들방이란다. 보일러도 들어오긴 하지만, 뜨듯한 방바닥에 몸 지지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마련했다고 한다.


꽤 넓은 거실엔 큰 창이 있어 산과 하늘이 시원하게 보였다. 밤에는 창문으로 별도 보인다고 하니 어떤 집이 이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2층 공간도 넓어서 창고로 쓰면 딱이겠다 싶었다. 계단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 냥이들에게도 흥미로운 집일 것 같았다.


집에 관한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었다. 사실 비포장도로가 꽤 구불구불해서 ‘이런 오지에도 집에 있냐’고 투덜댔었는데, 집을 보니 부정적인 마음이 싹 사라졌다. 희한하다. 집이란 그런 것인가. 딱 보는 순간 ‘우리 집이구나!’ 하고 직감이 오는, 청아한 종소리가 딩 하고 울리는.


산속에 있는 집이라 보증금이 심하게 저렴했다. 그러나 월세는 경기도 오피스텔과 맞먹을 정도였다. 대신 관리비가 반값도 안 됐다. 100%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랴 싶어 딱 1년만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날벼락같은 남편의 뇌경색


집 계약을 앞두고 오빠에게 병이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는 거다. 그 무렵 오빠의 이모부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는데 충격을 크게 받아서 그런 가보다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갔는데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바로 입원했다.


병명도 생소한 뇌경색이란 놈은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 일주일간 입원하면서 건강 회복에만 집중했다. 여주 시골집은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퇴원을 해도 계속 병원에 다녀야 할 것이고, 언제 또 갑자기 쓰러질지 모르니 병원에서 먼 곳으로는 절대 갈 수 없을 거라 예상했다. 부모님도 이 상황에서 우리가 시골로 이사 가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그런데 오빠는 이사를 강행하고자 했다. 병원은 몇 달에 한번 가는 거고,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119가 가까이에 있으니 괜찮을 거라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뇌경색도 뇌경색이지만, 이번에 알게 된 당뇨 관리가 중요하니 오히려 시골에 살면서 집밥 해 먹고 조용히 요양하는 심정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이번 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으니 마음 정리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우린 산골 마을로 기어이 이사를 갔다. 부모님의 걱정을 “더 건강해져서 돌아올게요”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부모님으로부터 더 독립하려면 이런 결정도 필요하다는 오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꿈에 그리던 전원에 ‘요양’하러 갈 줄은 몰랐는데... 기분이 묘했다.


우리가 이사 간 집은 ‘ㅇㅇㅇ 전원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곳에 있었다. 이웃 중 한 분도 뇌종양 투병 중에 이 동네로 오게 됐는데, 많이 회복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오빠도 이 전원마을에 살면서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길 바랐다.


시골에서 겨울을 나다


12월 중순부터 시골 생활을시작했다. 때때로 눈이 왔고, 설경은 멋졌다. 오빠는 눈을 쓸었고 밤마다 불을 때었다. 아침엔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고, 문을 열면 나무 탄 냄새가 났다. 시골 풍경은 아름다웠다. 사람이 거의 없으니 자유롭게 동네를 산책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녀도 괜찮을 만큼 무해한 곳이었다.


3월 초까지 일을 쉬었다. 살면서 이렇게 평화로운 때가 있었나 싶었다. 다행히 오빠는 날마다 말이 늘었고 빠르게 회복했다. 당뇨 수치도 3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의 매 끼를 집에서 해 먹었고, 병원에서 피하라는 음식은 철저히 먹지 않았더니 나온 결과다. 도시에 살 때는 거의 외식을 했고 술도 제법 마셨는데, 산골로 이사 온 후 그럴 일이 없어졌다. 일단,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게 자체가 없다. 가장 가까운 마트도 차를 타고 15분 이상 가야 하고, 대형 마트는 30분 이상 달려야 나왔다.


동네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큰일이니, 자연스럽게 집에서의 생활이 늘었고 장을 한번 볼 때 일주일치 식량을 사놓았다. 특히 겨울엔 눈이 많이 와서 도로 상태도 중요했다. 어디 나갈 일이 있으면 미리 날씨부터 체크하고 대비하는 게 습관이 됐다.


추운 줄도 모르고 지낸 지난 겨울. 눈 내린 풍경은 절경이었다.


오빠의 회복은 성공적이었다. 일을 다시 시작할 시기가 되니 어느새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집 앞마당에는 개나리가 예쁘게 피었다. 차가웠던 공기가 조금씩 따뜻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주인아저씨가 키우는 개를 보살피는 게 오빠의 일과였는데, 아주 춥지만 않으면 운동 삼아 아침저녁으로 개와 산책을 했다. 오빠가 건강해진 건 확실히 전원생활 덕분인 게 맞다. 나도 덩달아 길에 핀 꽃 사진을 찍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산골에 살며 도시에 살며


문제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생각보다 나갈 일이 많아지면서 장거리 운전이 잦아졌다. 차 유지비가 늘었고,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빠의 피곤함과 더불어 시간 관리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예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상했던 것보다 컸다. 도로 상태가 안 좋은 날엔 예민함이 극도에 달해, 별 것 아닌 일로 오빠와 감정싸움하는 날이 많았다.


한번 도시에 나가면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스케줄을 한 번에 몰아서 짜는 일이 많았다. 일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짜증이 밀려왔다.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자 집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때는 몰랐던 시골 생활의 단점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산골에 살며 기동성이 떨어지게 되니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번 나가는 일이 이렇게 부담이 돼서야 일이 되겠나 싶었던 거다. 아무래도 산골에 오래 살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로망이었던 전원생활에 빨간 불이 켜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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