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에서 '미라클 모닝'

여주 전원마을 생활기

by 유유히유영

여주에서 생활한 지 딱 반년이 지났다. 1년 중 절반, 시간은 참 빨리 흐른다. 이곳으로 오고 나서 변화가 생겼다.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일찍 잠든다. 아내보다 먼저 잠자리에 드는 날이 오다니, 사실인가 싶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외롭다, 쓸쓸하다’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그런 소리를 않는다. 오히려 아내의 배려 아래, 잠이 든다. 내 뇌혈관 때문에 그런 듯하다.


지난해 11월, 병원에서 뇌 검사를 받았다. 병명은 뇌경색. 함께 병원을 찾은 아내는 너무나도 놀랐다. 42살에 경험하기에는 무척 이른 병이었는데, 나도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의사는 검사를 더 정밀하게 해야 한다며 입원을 추천했다. 입원해서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내 뇌로 흐르는 혈관이 너무 좁아서 생긴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모야모야병 인자가 내 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말이 안 나왔다. 진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뇌에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위에 뇌경색이 온 것이다. ‘잘 회복해 나가면 몇 개월 안에 눈에 띄게 호전될 테니 너무 염려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우리는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어쩌면 그 기간, 아내는 절망했는지 모른다. 아니, 아주 조금씩 실감했다고 하는 맞는 말이다. 그야말로 조금씩 내 병을 절감해 갔다.


작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는 폭발했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아내는 답답해하던 일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일순 터졌다. 참아왔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렀다. 내게 참아 왔던 말을 내뱉었다. “오빠는 왜 말을 못 해?” 순간 당황했다. 무언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당황한 순간은 원래 기억에 잘 남지 않는데, 그날은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아내는 내 상황을 잘 받아들였다. 그 뒤로 아내는 날 잘 보살폈다. 나도 스스로 잘 챙겼다. 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실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 원래 나는 아내보다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났다. 아내가 먼저 잠들지 못하게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내는 새벽 3시에 잠들었고, 나는 새벽 4시에 꿈나라로 떠났다.(지금도 아내는 1시에서 2시에 잔다.)


개와 함께하는 미라클 모닝


나는 이제 새벽닭이 우는 시간에 일어난다. 아내는 ‘미라클 모닝’을 실현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잘 이뤄지지는 않았다. 나라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 처음엔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주인집 개와 친해지는 일이 전부였다. 덩치가 있는 개라 여겨 조금 무서워했다. 거기다 어린 시절 개에게 물린 아픈 추억이 있으니 무섭지 않겠는가. 개 공포증에 준하는 개 기피증이 있었다. 그런 내가 개와 친해지다니.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개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기 시작한 순간, 어쩌면 마음도 함께 녹았는지 모른다. 처음 보았을 때, 개는 거의 매일 묶여 있었다. 집주인이 거의 매일 오는데, 자신이 올 때 풀어 주고 갈 때는 개를 묶어 두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묶여 있는데, 얼마나 답답할까. 밤이면 묶여, 개집에서 하늘만 쳐다보는 표정이 무척 슬퍼 보였다.


개의 이름은 ‘September’였다. 우리말로 구월, 9월에 이 집에 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을 듣고,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무서움은 어디로 가고, 귀여움이 가득했다. 험상궂은 첫인상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매일 같이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심까지 가득한 녀석이었다. 그 충성심 강한 녀석을 처음으로 쓰다듬었던 날이 기억난다. 저녁에 집주인이 가고 난 뒤, 난 녀석에게 다가갔다. 구월이는 전혀 짖지 않았다. 너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구월이가 기지개 켜는 모습.


그 뒤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집주인이 늦게 오는 날이나 오지 않는 날이면, 녀석을 풀어주고 밥과 물도 챙겨준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함께 걷는다. 요새 구월과 함께하는 산책 시간이 늘어 하루에 두 번 정도 나간다. 물론 일이 많거나 비가 오면 나가지 못한다. 그런 날이면 함께 걷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른다. 구월과 함께 걷는 날이면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행복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내가 부쩍 친해진 구월과의 관계에 질투를 느낄 시점이었다. 신이 있다면, 딱 적절한 시기에 이곳, 여주로 보내 나와 구월의 만남을 마련해 주지 않았을까. 내 뇌혈관 상태로 봐서는 산책이 최선의 운동이었으니, 파트너를 향한 내 마음이 그랬다. 구월이가 나의 산책 담당자가 된 기분이었다. 얼마나 똑똑한지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구간도 달랐다. 구월을 보는 내 눈이 ‘하트’ 모양으로 변했다.


내 건강을 생각하는 존재가(아내가 아닌) 구월이라는 사실에 즐겁다. 요즘 많이 웃는 이유가 어쩌면 사랑하는 존재가 하나 더 늘어서 그런지 모른다. “개는 우리의 삶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개는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만든다.” 사진가 로저 카라스가 한 말이다. 어쩌면 내가 그간 개를 많이 오해하고 있었나 보다. 이곳, 여주에 와서 느끼는 가장 좋은 것, 바로 구월이와 친해지는 바로 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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