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부부가 신도시에 살아도 될까?

신도시에서 초딩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이야기 by 믹서

by 유유히유영
여긴 어디? 난 누구?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신도시에 살면서 위 문장을 여러 번 읊었었더랬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일산에서 하남미사 쪽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붕 뜬 기분으로 2년을 보냈다. 신도시는 살기 좋은 곳임에 틀림없었지만, 내게 어울리는 장소인지는 의문이었다. 그건 다 동네 아이들 때문이었다.


저출산 때문에 이 나라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통계를 봐도 출산율이 바닥인 건 팩트다. 하지만 통계라는 게 무색할 만큼 내가 살던 동네엔 애들이 바글바글했다.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는 늘 만원이었다. 조카와 함께 놀이터에 가서 그네 한번 타게 해 주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아니, 이렇게 애들이 많은데 대체 누가 애를 안 낳는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빼고 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또래 지인 중에 미혼은 꽤 있지만, 기혼자인데 아이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출산율이라는 것도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가임기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내는 통계다. 저출산, 인구 절벽이라는 결과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더 큰 이유로 작동한다. 옛날 옛적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일단 결혼을 하면 한 명 이상 아이를 낳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부부는 결혼 9년 차, 자녀가 없다. 7년 전 유산을 한번 했다. 그 당시엔 당연히 다시 아이를 가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11주 만에 유산하고 너무 힘든 시간들을 보내서, 아이 잃은 슬픔을 없앨 수 있는 건 다시 올 아이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직장에서 일은 점점 더 바빠졌고 원하던 다큐 연출을 할 기회도 찾아와서 아이 갖는 일은 뒷전이 됐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지났다.


신도시에 살았을 때는 30대로서 마지막 나날들이 지나가던 무렵이었다. 그 말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 고민하는 일도 거의 끝나간다는 의미였다. 요새는 40대에도 많이 출산을 한다지만, 내 심적인 마지노선은 마흔이었다. (현재 나는 마흔한 살이고 고민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흔들흔들거리는 중이다.)


아이 없이 서른아홉 살이 되었고, 엄마가 되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의 끝자락에서 애들이 너무 많은 동네에 살게 됐으니 인생이란 참 재밌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 집 거실 창문에서는 놀이터와 초등학교가 바로 보였다. 정겨운 학교 종소리도 들리고, 등하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잘 들렸다. 눈만 뜨면 아이들이 보였고, 아이들을 챙기는 부모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됐다.


201512010954379_WOY2EH2K.jpeg 신도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는 정말 훌륭하다. 동마다 놀이터의 특색도 달라 아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깨끗하고 안전해 보였다.


정녕 이곳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고 학교 보내기에 최적화된 동네였다. 실제로도 서울의 구도심에 비해 신도시에 있는 학교에 학생 수가 더 많다고 한다. 깔끔한 신도시를 에워싼 새 건물들은 각종 학원들과 태권도장, 소아과를 비롯해 여러 병원들로 채워졌다. 산책로와 공원은 자전거나 킥보드 타는 아이를 챙기는 부모들로 가득했다. 실로 평화로운 분위기의 이곳은 누가 봐도 살기 좋은 동네였다. 나 역시 부족함 하나 없이 편안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신도시에 사는 동안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고, 왠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소위 딩크족인 우리 부부보다는 아이가 있는 가정이 이곳에 살아야 마땅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신도시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감정을 늘 안고 살았었다. 아마 아이에 대한 고민이 막바지에 이른 초예민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낳을 거야, 말 거야? 결정해.

신도시 아파트는 매일 내게 묻고 있었다. 저 질문에 무슨 말이든 대답해야 할 것 같아 초조했다. 안 그래도 내년에 마흔이라 나라고 어쩔 도리가 있겠나. 마음을 정해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 없이 이곳에 살며, 내 것이 아닌 누군가의 옷을 잠시 빌려 입은 기분에서 벗어나려면 선택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신도시에 눌러살 것인가, 아이 없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신도시를 떠날 것인가.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도 이제 거의 포기 상태여서 잔소리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혼자 벼랑 끝에 서 있었을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실은 그때 난 10여 년간의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독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 남편과 함께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인생 최대의 고민이 한꺼번에 몰린 상황이었던 거다. 아이 문제와 더불어 일하는 사람으로서도 새로운 길을 가느냐 마느냐 선택해야 했던 때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가지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었고, 계획했던 새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마음을 정하고 조금은 편해졌지만, 동네 아이들을 보면 여전히 심란했다. 아이 문제는 무 자르듯 분명하게 선을 긋기엔 너무 어려운 이슈였다.


결국 2년 만에 신도시를 떠나게 됐다. 아이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퇴사를 하고 독립하며 자리를 잡아가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브레이크가 걸렸다. 오빠에게 예상치 못한 병이 찾아온 것이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걸 머리론 알았지만, 이번에 진짜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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