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떠난 지 7년 만에 다시 서울로 by 믹서
도시로 가야 일이 되겠어
약 10개월간 산속에 살며 절감했다. 도시에 살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기동성’의 중요성을 말이다. 꼭 도시에 직장이 있지 않더라도, 경우에 따라선 자기 일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도시에 거점을 두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2021년 9월, 여주 산골에서 서울로 이사 오며 비싼 수업료를 냈지만, 배운 점이 상당히 많다.
처음부터 서울로 올 생각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도시로 가야겠다는 결심만 있었지 서울로 갈 엄두는 못 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집세 기준을 훨씬 넘을 게 뻔한 서울은 이사 후보지에도 못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보게 됐다. 최근에 그는 통창에 한강 뷰가 시원하게 보이는 집에 이사 왔다고 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그 집을 선택한 이유를 듣고 내게도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남들이 뭐라든 내가 만족하고 행복한 곳에 살고 싶었어요. 매우 비싼 월세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선택한 건 후회하지 않아요. 집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 계획도 있고, 이미 그 계획이 실행되고 있으니까요. 내가 가는 길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면 돼요.”
화면에 보이는 그 집은 누구에게나 로망이 될 만한 환상적인 전망이 최고의 매력이었다. 요샌 ‘한강 조망권’이라는 게 인정되어, 로열티를 더 주고서라도 전망이 좋은 집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멋진 뷰가 있는 집을 선망했다. 자연이 좋아 전원생활하러 여주에 갔을 때도 그 집의 뷰가 굉장히 멋졌기 때문에 선택한 부분이 컸다.
이번엔 이사의 목적이 명확했으므로 집 선택의 기준이 첫째도 기동성, 둘째도 기동성이지만, 셋째는 시티 뷰로 정하면 너무 욕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로 이사 가기로 결정한 뒤,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인근의 몇몇 집을 알아보다가 지친 상황이었다. 딱 내 집이다 싶은 집을 찾지 못했기도 했지만, 겨우 구한 집들의 계약이 자꾸 불발되었고, 실망하게 되다 보니 ‘이게 뭔가’ 싶었던 거다.
오빠와 진지하게 상의했다. 이왕 일 때문에 도시로 가는 거, 일을 추진하기에 확실하게 좋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보통 일들이 서울에서 많이 이루어지니, 경기도 말고 ‘서울’을 알아보기로 했다. 서울이니 집세는 비싸겠지만 사업 추진비 명목으로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그만큼 우리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강동, 송파 출신인 오빠와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동쪽으로 향했다. 부동산 어플에서 눈에 띄는 한 오피스텔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신축이었고, 공사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천호역에서 5분 거리였다. 우리가 본 집은 꼭대기 층으로, 프라이빗한 루프탑 포함 삼복층 집이었다. 서울 오피스텔이 다 그렇듯 평수는 매우 작았지만, 짐을 좀 덜어내면 두 사람 살기에는 괜찮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 뷰가 끝내줬다. ‘우리집이다! 딩!’ 하는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이었다.
결국 우리는 천호동으로 이사했다. 사람 없는 곳에 살다가, 사람 너무 많은 곳으로 온 게다. (천호동은 실제로 서울 시내 중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 10위 안에 든다.) 사실 오빠에게는 공황 증세가 있어 붐비는 장소에서 지내기에 얼마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천호동은 오빠에게 익숙한 동네라 비교적 빠르게 적응을 했다. 오빠와 나는 천호동에 있는 대형 교회 청년부에서 만나 결혼한 케이스다. 곳곳에 우리의 추억이 묻어있는 동네, 바로 천호동이다.
서울로 이사 온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었다. 산골에서 도시로 오면서 기대했던 일 관련한 기동성은 물론이고, 사는 집으로서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오빠가 다니는 병원도 걸어서 10분 거리라 부모님도 더 안심할 수 있게 됐다.
주변에 편의 시설이 넘쳐 나니 불편함이 없고, 차 유지비도 확 줄었다. 걸어서 이마트도 가고 교보문고도 가고 각종 식당에도 간다. 물론 단점도 있다. 자연과 멀어진 서운함은 뒤로 하더라도, 외식과 배달이 늘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요리해 먹는 습관을 겨우 들여놨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좀 겁이 난다. 오빠의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이니 계속 노력해야 할 지점이다.
루프탑에 자주 올라가서 저녁 식사를 한다. 기대했던 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한다. 며칠 전에는 불멍도 했다. 여주에 살 때도 가끔 집 앞에서 불멍 하면서 맥주 한 캔씩 했었는데 모기한테 열 방은 더 물렸던 것 같다. 정체 모를 벌레들과의 만남 역시 각오해야 했다. 역시 자연은 멀리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인가. 자연과 가까이 있고 싶어서 간 집에서 맞닥뜨린 자연은 불편하고 성가스러웠는데, 도시 옥상에서 멀리 보이는 한강은 멋있고 아름답기만 하다. 벌레도, 모기도 날 괴롭히지 않는다.
‘이사’는 쉽지 않다. 매우 큰일이다. 우리 부부는 9년간 함께 살며 그 힘든 이사를 8번이나 했다. 계약 기간이 다 되어서 이사 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때그때마다 이사하는 이유와 상황이 달랐다. 이사할 동네와 집을 선택한 이유들도 다양했다. 결혼 후 부모님 댁과 가까운 서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고, 부모님 곁을 떠나 경기도로 갔다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감히 미국행을 선택했다. 인생의 쓴 맛 제대로 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아마 내년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또 다른 곳을 향해 거처를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선택이 누구에게나 맞는 보편적인 최선은 아닐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우리가 해온 선택들이 잘못됐다고,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엔 정답이 없듯이, 집도 마찬가지 아닐까. 각자에게 잘 맞는 가장 좋은 집이 무엇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여러 개를 고를 수 없기에 기회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8번 치른 그 기회비용으로 인해 인생을 배워 나갔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닌, 남편이 좋고 내가 좋아야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떤 공간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한지 알아가는 과정이 ‘이사’였다. 집에 대한 최선의 결정을 했으면 돌아보지 않기. 선택으로 인해 얻은 것과 포기한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집을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